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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세상에서 '哲人 법조인'의 길 걸으소서

    이시윤 변호사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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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윤 변호사

    선생은 1926년에 탄생하여 2018년 12월 24일에 92세로 일기를 마치셨다. 일찍이 경기중학교 4학년을 마치고 일본의 명문인 제3고등학교 불문과에 진학한 수재이셨다. 그 뒤 동경제대를 마다하고 일본에서 철학으로 유명한 교토제국대학 철학과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 해방을 맞아 귀국하여 엄친의 강권으로 법과에 근접한 서울대 정치학과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제3회 조선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 법관의 길에 들어섰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수석 부장판사를 끝으로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법조의 길에 진입하였다. 서울지방변호사 회장도 역임하였지만, 프로 법조인보다는 아마추어 법조인에 속하며 틈 있으면 철학책을 놓지 않았다.


    헌재소장에서 은퇴한 뒤에도 하이뎃카의 '존재와 시간'을 탐독하다가 시력 때문에 완독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고, 선생은 역시 영웅심이나 출세의 속물근성을 탈피한 철인(哲人) 법조인이라 생각되었다.


    선생은 우리나라 헌법재판의 아버지이다. 민·형사 재판 위주의 재판 풍토에서 추가로 헌법재판이란 사법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황무지인 헌법재판제도의 확립을 위하여 60세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독일어 공부에 2년간이나 집중하였던 끝에, 큰 불편 없이 독일어 원서에 접근함으로써 우리나라 헌법재판의 금자탑을 쌓으셨다.


    나아가 선생은 범접하기 어려운 재판권 독립의 위상을 지키려 했다. 노태우 대통령께서 우리들 9인의 재판관을 점심 초대를 한 일이 있었다. 당시 대통령은 절대군주였다. 그 앞에서 담배를 꺼내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큰 불경이었다. 그런데 조 소장은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재떨이를 주문하는 것이었다. 욕망을 털어버린 야인(野人)의 기질 발휘로 보이고, 재판권 독립의 상징적 표시로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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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조규광 헌재소장

    위헌으로 난다는 평의 결과가 누설이 되었는지 대법원 측이 연기신청을 간곡히 요망했다. 재판관 사이에 찬반의 격심한 논란이 있었으나 재판장의 직권으로 대법원의 요청을 거부하고 연기를 받아주지 아니하였다. 원래 조 소장은 이일규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헌재소장에 취임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도 공사(公私)의 구별이 선명하였다. 


    그러나 평화 공존의 의지를 엿볼 일도 있었다. 미국 워싱턴 D.C.에서 세계최고법관회의가 개최되었을 때에 주최측이 대법원장과 헌재소장 두 분을 초청하였건만, 두 기관장이 대외적으로 맞선다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었는지, 대법원장이 가는데 자신은 비켜서고 소생을 대행시킨 일이 있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섭리에 의하여 선생은 이제 아쉽게도 우리 곁을 떠나셨다. 이제 광명 천지의 새 세상에서 시력 때문에 못 보았던 책들을 마음껏 읽으며 철인법조인의 길을 계속하리라 믿는다. 삼가 명복을 비나이다.


    초대 조규광 court의 구성원

    이시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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