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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결문과 한글

    박동섭 변호사 (법무법인 새한양)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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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는 판결문 전체의 독해난이도를 문제 삼으려는 것은 아니고, 판결문 문장의 문법상 구조, 단어의 선택 등을 중심으로, 몇 가지 예를 들어 잘못을 지적하려고 한다. 아무리 명문의 판결문이라고 할지라도, 우리 한글의 맞춤법에 맞지 않는 글로 써있다면 권위가 떨어진다. 판결문에서 잘못된 용어, 맞춤법에 틀린 표현을 가끔 발견하면, 눈에 거슬리고 옥에 티가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하나 보자. “계모와 계자 상호간에 재산의 이전을 원한다면 증여나 유증 등에 의하여 상속에 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계모가 사망하는 경우 계자를 상속권자로 규정하지 않은 것은… 피해의 최소성 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 없다."(헌재 2009. 11. 26. 선고 2007헌마1424 전원재판부 결정) 


    이 결정문에서 '계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계자는 ‘전처의 출생자’가 아니므로, 계자라고 표현하여서는 안 된다. 좀 길더라도 ‘전처의 출생자’라고 표현하여야 정확하게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개정민법(1991년 1월 1일 시행 법률 제4199호) 부칙 제4조(모와 자기의 출생 아닌 자에 관한 경과조치)는 '이 법 시행일전에 발생한 전처의 출생자와 계모 및 그 혈족·인척사이의 친족관계와 혼인 외의 출생자와 부의 배우자 및 그 혈족·인척사이의 친족관계는 이 법 시행일부터 소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재 결정문에서 말하는 '계자'는 개정민법부칙 제4조와 결정문이 표현하려고 의도하는 '전처의 출생자'가 아니라, 아래의 설명에 따르면, 오히려 문자 그대로 '계모의 출생자'가 된다. 이는 결정문전체의 취지와는 전혀 다르게 표현한 결과가 되고 만다.

    계자의 의미를 사전에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계자 : 繼子/系子 ① 양자(養子) 즉, 아들이 없는 집에서 대를 잇기 위하여 동성동본의 자녀 중에서 데려다 기르는 조카뻘 되는 아들 ② 의붓자식, 즉 개가하여 온 아내나 첩이 데리고 들어온 자식 ③ 계자(季子) : 막내아들(= 맨 나중에 낳은 아들).

    결정문에서 말하는 계자를 사전에 나오는 그대로 이에 적용시키면,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르고 만다. '계모가 사망하는 경우 계자를 상속권자로 규정하지 않은 것'이라고 써 놓았는데, 이는 '계모가 사망하는 경우 계자(계모가 데리고 들어온 자식, 혹은 막내아들)를 상속권자로 규정하지 않은 것'이라는 말이 되는바, 입법자가 그렇게 입법한 일이 없다. 개정민법부칙 제4조에서 말하는 전처의 출생자는 헌재 결정문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 '계자'와 동일한 것이 아님을 주의하여야 한다. 동 결정문에서는 계자라는 용어를 여러 번 사용하고 있다. 용어의 의미를 모르고 사용하였을 것이다.

    부디 최고의 헌법기관인 헌법재판소에서 그 이름으로 결정문을 작성할 때,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여 그 결정문을 읽는 일반 국민들에게 혼동을 일으키게 하거나 오해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문장구조가 어색한 것]

    1개의 문장에 주어가 2개인 것이 더러 있다. "… 재항고인의 항고를 기각한 것은 민법 제1095조 및 제1096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재판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대법원 2007. 10. 18.자 2007스31 결정의 일부)." 우리 맞춤법에 맞는 문장은 항고를 기각한 것은 … 위법이다. 항고를 기각한 데는 …위법이 있다.


    [상당하다]

    "상속인의 직계비속, 배우자, 직계존속 등에게 이루어진 증여나 유증도 특별수익으로서 이를 고려할 수 있다고 함이 상당하다(대법원 2007. 8. 28., 2006스3,4 상속재산분할·기여분 결정)." '상당하다'는 말을 사전에 찾아보면, ① 동사 : 일정한 액수나 수치, 정도 따위에 이르다. ② 형용사 : 어느 정도에 가깝거나 알맞다. 유의어 : 끔찍하다, 굉장하다, 대단하다. ③ 형용사 : ‘마땅하다’의 방언(제주).

    상당하다의 어원(語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형용사] ① 꽤 대단하다. 그는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다. ② 어지간히 많다. 또는 적지 아니하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들다. ③ 일본어와 중국어의 뜻은 [합당하다, 엇비슷하다, 적당하다]로 쓰인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상당하다’를 중국이나 일본처럼 ‘정당하다’ ‘합당하다’는 뜻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 말로 ‘정당하다’ ‘마땅하다’ ‘타당하다’를 써야 한다. 그러므로 “정당하다”를 써야할 곳에서 ‘상당하다’를 쓰는 것은 일본식민지 시대의 관행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에 의(依)하여]

    이는 일본식 중국글자 말투에 따라서 쓰는 경우이다. “이 사건 사실혼관계의 해소가 소외인의 사망에 의한 것임을 전제로 판단한 것은 …운운…(대법원 2009. 2. 9.자 2008스105 결정).” “사망에 따른 것임을” 혹은, “사망으로 인한 것임을”이라고 쓸 수 있다. 우리나라고 일본이고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중국글자 말 예컨대, ‘의(依)하여’ 따위를 즐겨 쓰는 까닭에…적어도 열 가지 이상 다르게 써야 할 우리말을 모조리 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우리말 애호가는 안타까워하고 있다.(이오덕, '우리글 바로쓰기 ②' 한길사, 1992, 21쪽)


    […에 있어서, 또는 …에 있어서는]

    “민법이 유언의 방식과 그 효력에 있어서 이른바 형식적 엄격주의를 취하여 유언의 자유에 대하여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는 것은,…운운…(서울중앙지법 2005. 7. 5. 선고, 2003가합86119 예금반환사건 판결)” 일본사람들의 글에 ‘니오이데(において; に於いて)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일한사전에 보면, 니오이데는 [연어]로서 ① 동작·작용이 행해지는 곳이나 때를 나타냄: …에서: …(때)에. ②…에 대해서: …에 관해서. 라고 해설하고 있다. 이 사전의 설명에 따르더라도 '효력에 있어서'를 '효력에서' 또는 '효력에 대해서'로 써야 우리말이 된다. 36년간의 일본 식민지 교육의 잔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독립된 지 70여년이 지나가고 있으니 이제는 우리글과 우리말을 되찾아야겠다. 우리말, 우리글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란다.


    박동섭 변호사 (법무법인 새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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