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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쓴 책] '불편할 준비'

    누군가에게 좀 불편하더라도 꼭 나누고 싶은 말 걸기

    이은의 변호사 (서울회)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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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사인'에서 릴레이 강연의 첫 주자로 강의를 하라고 했다. 그즈음 끝난 연애의 후유증을 겪고 있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이별엔 상실감이 뒤따르게 마련이고, 이미 알고 있는 수순이라고 해도 금방 괜찮을 순 없었다.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연상연하 커플로 지내면서, 나름의 애환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기가 어려웠다. 한편 그 즈음엔 국선으로 맡았던 사건과 관련해서 가해자로부터 집요한 스토킹 피해도 입었다. 내가 여자라서 더 쉽게 노출되고 더 강하게 입는 피해인데, 남자 변호사들과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늘 긴 설명을 해야 했다.


    이렇게 여성이라면 갖는 고충이 응당 내게도 있었고, 여성이라서 생기는 불편함도 늘 존재했다, 반면에 이런 정보를 얻고 소통할만한 창구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런 즈음, 함께 '시사인'에 돌아가며 칼럼을 쓰는 분들과 교류가 시작됐다. 그것은 꽤나 ‘시원한’ 자리였다. 편견, 불편함, 어려움 같은 것들을 각자 글로 꺼내놓다가 모여서 말로 꺼내놓는 일은 치유가 되고 공부가 되었다. 그리고 나를 포함한 그들 몇몇을 강연자로 끌어내는 자리에 서게 됐다.

    여성이, 소수자가 갖는 불편함과 부당함은, 실은 당연하지 않은데 당연한 것처럼 전제되고 존재한다. 그래서 그런 불편과 부당을 말로 꺼내놓는 것은 그 자체가 해결의 시작점이 된다. 그런데 불편하지 않았고 부당하지 않았던 쪽에서 보면 불편하고 부당하다고 꺼내놓은 말들이 불편하다. 분쟁을 조장하거나 쓸데없는 것이라 치부하곤 하는데, 그 말을 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불편함이나 부당함의 기울어진 시소 위의 어느 지점에서 편안했다면, 그것은 반대편의 지점에 있는 누군가에게 빚진 것이기 때문이다.

    칼럼을 쓰다가 강연에 나선 '불편할 준비'의 필진들은, 각자의 직업전선에서 이런 불편이나 부당함과 관련된 일을 하는 이들이었다. 그런 일들의 토대 위에서 글을 썼고, 그러다가 말을 하는 자리를 갖게 되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해 글을 쓰는 것만큼이나, 애써 시간을 내서 모인 사람들을 향해 말을 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한편 가슴 뛰는 일이었다. 내 문제로 싸웠던 과거와 타인의 손을 붙잡고 싸우고 있는 오늘을 정리하고, 이야기를 건넸다. 말하고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갖다보니, 종종 내 일에만 천착하기 쉽다. 그런데 나와 비슷하기도 하고 나와는 또 다르기도 한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들을 듣는 것은 설레는 한편 깨달음과 겸손을 주는 시간이었다. 사무실에 쌓인 기록 봉투에 담긴 피해 입은 여성들의 싸움을 해나가면서도, 정작 내 몸에 대해, 내가 속한 사회에 대해, 치유와 글쓰기에 대해, 허구헌날 접하는 드라마 같은 콘텐츠에 대해. 몰랐거나 잊었던 것들을 돌아보는 시간. '불편할 준비'는 그런 말하기와 교류의 기록이다. 그리고 우리끼리의 소통이 아니라 한 번에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향한 같은 말걸기이다. 이 소통이 누군가에게 좀 불편하더라도, 그래서 누군가는 이 말 걸기를 불편해더라도, 그래서 그 불편한 시선으로 다른 불편함이 생기더라도 꼭 나누고 싶은 말, 그런 말 걸기. 그래서, 쑥스럽지만 쓱, 자신 있게 내밀어 본다. 같이 이야기 해요, 라고.


    이은의 변호사 (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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