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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관의 책임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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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든 판결을 선고하고 지쳐 퇴근하던 어느 날이었다. 원고는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순간의 판단 실수를 하였을 뿐인데, 그에 비해 행정청의 처분이 너무 가혹하고, 그로 인해 원고뿐 아니라 주변인들의 삶이 엉망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실제로 그래 보였다. 변론 기일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원고의 어머니는 기일을 거듭할수록 수척해졌고 선고 날에도 어김없이 나와 결국 깊은 울음을 터뜨렸다. 원고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호감이 갔고 많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법의 취지는 명확하였고, 원고의 여러 사정은 그와 같은 처분을 받은 다른 이들과 그의 사건을 달리 보도록 하기에 부족하였다. 이래저래 무거운 마음으로 차를 운전하던 중 전방에 정지신호가 들어왔다. 차를 천천히 세우는데 갑자기 뒤에서 거친 엔진소리와 함께 “끼이익~!!”하는 급정거 소리가 날아온다. 순간 교통사고의 예감으로 눈을 질끈 감으며, 불현듯 ‘올 것이 왔다’라는 생각이 함께 든 것은 왜였는지. 다행히 사고는 크지 않았다. 뒤 트렁크가 잘 닫히지 않는데도 마냥 괜찮다는 표정인 나에게 약간 당황하며 뒤 차 운전자가 건넨 명함에는 물론 그 원고와 연결지을 만한 아무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 무렵부터였나 보다. 판사와 검사는 직업에 칼이 들어있다고 한다. 검사도 아닌 판사가 웬 칼인가 하였는데, 판사에게 들린 날카로운 칼이 확실히 보였다. 다른 이에게 상처를 입히고 눈물을 흘리게 한 모든 일에 대가가 따르는 것이 마땅한 세상의 법칙이라는 당연한 사실도 새삼 다가왔다. 옳은 일을 하며 그랬더라도 아예 피할 수는 없을 것인데, 하물며 그 일이 떳떳하고 당당하지조차 않다면 그 가중된 대가를 어찌 다 치를 수 있을까. 법관이 그의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여야 한다는 것은, 이런 책임을 경고해 주는 말일 것이다. 그 무서운 책임의 무게를 생각하며, 올 해 또 다시 법대에 오른다.


    이주영 부장판사 (서울남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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