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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모사] 진정한 법치구현의 선각자

    - 1週忌를 맞은 人樹 李宅珪 회장을 추모하며 -

    최경원 (前 법무부장관)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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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人樹 李宅珪 회장님의 10주기를 맞아 진정한 법치를 염원하는 선각자이며 수범자이셨던 법조선배에 대한 존경과 회고의 상념에 빠지게 됩니다.


    1968년 여름 서울지검 청사에서 검사직무대리로 처음 뵈었던 날, 故人께서는 서울지검 경제부장 겸 밀수합동수사반장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위세 높은 검사이셨습니다.

    방을 잘못 찾아 들어가 당황해 하는 사회초년생에게 질책대신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해 주시던 故人의 자애스런 모습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 公人으로서는 추상같은 강골검사였지만, 사석에서는 시골어른처럼 격의 없고 인간미 넘치는 가까이 모시고 싶은 선배였습니다.
    제가 검사로 임관되어 법조인으로서 첫 출발을 했을 때는 故人께서는 제주지검장과 관세청장을 거치신 후 재야법조인의 길을 걷고 계셔서 직접 지도 받을 기회는 없었으나, 만나 뵐 때마다 친절한 지도와 격려말씀을 아끼지 않는 잊지 못할 스승이셨습니다.

    현직에 계실 때는 자유당 간부와 금융계 인사의 불법 정치자금 사건, 5대 재벌의 부정축재 사건, 3·15 부정선거사범 등 巨惡 非理 搜査를 통하여 대쪽 같은 강골검사로서의 면모를 온 천하에 과시했고 후배 검사들로부터 “한 마디로 크고 강한 검사”라는 칭송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공직을 떠나신 후에는 변호사로 활동하시면서 대한변호사협회 부협회장, 서울통합변호사회장, 검찰동우회장을 맡으셔서 재야 법조의 결속과 변호사단체의 공익성 제고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그 후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법률신문을 인수하셔서 1985년 1월 30일 법률신문사 제6대 사장에 취임하신 후 사재를 들여 사옥이전, 본문 활자크기 개선, 지면개편 등을 통해 專門紙로서의 눈부신 도약을 이루어 내셨고, 월간법률의 발간, 신법전, 신법률학대사전과 한국법조인대관의 편찬에 진력하셔서 법조정보의 신속한 전달을 통해 법조현대화의 터전을 마련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법조문화 창달과 법치정의 구현이라는 故人의 투철한 소명의식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서 故人이 법조인으로서는 물론 언론인으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법무행정 책임을 맡아 故人을 뵈었을 때도 “최 장관, 진정한 법치의 실현은 공정한 경쟁기회를 부여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 이라고 검찰인사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던 모습이 뇌리에 생생합니다.

    연세가 드셔서도 혼탁해지는 법조풍토와 준법의식 해이현상을 우려하시면서 법조원로로서의 조언과 당부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법률가는 여론형성의 주도자가 되어 사회의 여론을 이끌어 가는 지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고 하시면서 법치에 도전하는 시도와 도전에 대하여는 단호히 대처할 것을 강조하시고 이를 몸소 실천하신 故人께서 幽明을 달리 하신 지도 어언 10년 - 상당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자랑스럽게 내세울 것이 없는 우리 법조계의 현실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나중에 故人을 뵙게 될 때 무슨 말씀으로 설명 드려야 할지 걱정이 앞섭니다.

    평생을 법치구현을 위해 헌신하신 人樹 李宅珪 회장님, “총칼보다 더 무서운 것은 법을 지키는 국민의 정신”이라고 가르쳐 주신 회장님의 모습을 그리며, 법조후배들의 존경과 간절한 추모의 念을 모아, 회장님의 모습을 직접 뵈올 수 없는 저희 모두의 아쉬움에 갈음하고자 합니다.


    최경원 (前 법무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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