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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정신청에 대한 단상

    이숙연 고법판사 (서울고등법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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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 기일마다 본안사건 30여 건의 재판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사무실에 돌아오면 재판부를 기다리는 것이 있다. 끊임없이 접수되어 쌓여있는 재정신청사건 기록들이다. 작년 한 해 서울고등법원에만 약 5,840건(사건수 기준)이 접수되었으니, 재정신청 담당 11개 행정부가 본안 재판을 하면서 매주 10여건을 처리해야만 하는 업무량이다.


    제정 형사소송법이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한 권리구제수단으로 모든 고소, 고발 사건에 대한 재정신청을 도입한 이래, 이 제도는 대상의 대폭 축소(유신시대)와 일부 확대(2007년 법 개정, 모든 고소사건과 일부 고발사건)를 거치며 이어져 왔다.

    재정신청사건 중 열에 아홉은 범죄가 성립되지 않거나, 적정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범죄를 뒷받침할 증거를 찾을 수 없어 불기소처분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 재정신청권의 남용으로 보이는 사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간혹, 몇 가지 증거가 추가로 수집되었다면 또는 다른 평면에서 사건을 바라봤다면 반대의 결론을 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사건들을 만나게 된다.

    재정법원은 필요한 때 증거를 조사할 수 있으나, 법관이 공소제기 결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자료수집을 하는 외에 적극적인 보완수사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많은 것 같다. 더러 심문기일을 열어 신청인이나 피의자의 진술을 듣기도 하나, 그 조서가 공소제기 후 본안에서 증거로 제출될지, 제출되더라도 증거능력과 증명력을 인정받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관련 계좌거래내역, 통신내역 등을 확인하고 싶어도, 재정법원이 압수수색 등 강제처분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는 소극적인 견해가 많고, 현실적으로 이를 수행할 인력도 없다.

    독일 어느 주 고등법원이 '대는 소를 포함한다는 명제에 따라 기소를 명할 수 있으면 수사재개도 명할 수 있다'는 논거 하에 검찰에 대해 수사개시명령을 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이후 독일은 실무상 법원이 검사에게 수사의뢰 또는 수사촉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검사에게 수사 촉탁 등을 할 수 있게 하거나, 재정담당변호사 제도를 두어 이들에게 보완수사를 명하는 방안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공소유지변호사 제도가 2007년 독일식 기소강제절차의 도입으로 폐지되면서, 검사가 무죄 구형을 하거나 공소유지에 소극적인 사례가 대두되었다. 동일사건에서 불기소처분과 항고기각을 한 검찰에 공소유지를 맡기는 것은 검사동일체 원칙에 반하며 예의도 아닌 것 같다. 같은 기소강제절차라 하더라도 독일에는 재정신청인이 검사와 함께 공소유지에 참가할 수 있는 '부대기소제도(Nebenklage)'가 있다는 점에서 우리와 큰 차이가 있다. 이에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는 공소유지방안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재정신청제도가 기소독점·편의주의에 대한 견제, 보완장치라면 그에 상응하는 수단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법관이 되어 어떤 사건을 마다하랴마는, 그 일이 진정으로 당사자의 권리를 구제할 실효적 수단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누르기는 어렵다.


    이숙연 고법판사 (서울고등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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