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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생했다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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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밤이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집에 왔으나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신림역까지 걷기로 하고 자취방을 나섰다. 걸어도 걸어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예정했던 신림역은 벌써 지나쳤지만 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정처 없이 계속 걸었다. 사법시험 2차 시험일이 얼마 남지 않은 초여름 밤이었다.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그 불안감 속에서 난 더욱더 강도를 높여가며 지난 수험 기간을 검열했다. 난 그동안 무얼 하며 지냈던가, 내가 공부를 하기는 하였던가. 지난 수험 생활은 불성실로만 가득차 있었다. 고시 공부를 했다고 말하기 부끄러웠다. 그러한 검열 끝에 ‘불성실한 나는 시험에 합격할 자격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나같은 녀석이 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으로 시험장에 들어갔다. 끊임없는 자기 검열과 자기 학대의 시간이었다.

    군대를 다녀와 다시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나는 자학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나를 인정해야 했다. 내가 성실히 공부를 했고, 그래서 시험에 합격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야 했다. 이른 아침 독서실 방 전등을 켰고, 자정이 지난 밤 그 전등을 껐다.

    합격할 만한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받았기 때문이었을까. 그해에 난 시험에 붙었다. 그러나 합격 후에도 꿈에서는 다시 시험에 낙방하곤 했다. 불안감과 검열이 나를 살찌운 것이 아니라 나에게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어루만져야 했다. 내 영혼을 달래야 했다.

    그래서 가끔 서울 어딘가를 배회하며 불안감에 젖어 있던 그날의 나에게 말한다. 불안해하지 말라고, 붙는 시험이라고. 독서실에 앉아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자학하던 나에게도 말을 건넨다.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잘 참고 있다고, 합격할 만큼의 실력이 된다고.

    합격 후 나에게 수고했다고 말했던 적이 몇 번 있었던가. 고생했다. 참말로 고생했다. 그리고, 다들 고생했다.


    홍승표 변호사 (법무법인 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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