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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다면”

    친생추정과 비(非)배우자 간 인공수정

    최유진 변호사(법무법인 성진)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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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힘으로는 떼어낼 수 없는 관계가 있다. 하늘이 맺어준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天倫)’이 바로 그것이다. 다만, 천륜에도 두 가지 속성이 있다. 모자(母子)간 친자관계는 출산과 동시에 결정되지만, 부자(父子, 정확하게는 ‘자녀를 출산한 어머니의 남편’과 자녀)간 친자관계는 그럴 수 없다. 이것이 ‘친생추정 제도(민법 제844조 제1항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한다)’가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친생추정’제도는 이처럼 하늘의 연을 맺어주는 역할을 하기에, 매우 확고한 제도로 규정되었다. 만일 가족관계가 잘못 등록되어 있는 것이 명백하더라도, 민법 제847조 ‘친생부인의 소’를 통하여 그 친생추정을 번복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물론 전부 가정의 평온보호 및 자녀의 복리 등을 위함이다.

     

    다만 이 때, 친생추정을 받지 않는 명백한 사유를 입증하여야 잘못 형성된 가족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데, 판례는 여기서의‘외관상 명백’한 사유를,‘아내가 자녀를 임신하였을 때 부부간 성적 관계를 가질 수 없음이 분명한 경우’와 같이 유달리 제한적으로 인정하여 왔다.

     

    그러나 현대 의학은 부자간 유전자형(DNA) 일치 여부를 검사하여 생물학적·과학적 친자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기에, 이제는 과거의 판례의 법리가 점차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마저 들게 되었을 따름이다.

     

    또한 남편이 아닌 제3자의 정자를 사용한 비(非)배우자간의 인공수정(Artificial Insemination by Donor, 이하‘AID’) 등 새로운 형태의 임신과 출산 모습이 나타났으며, 가정 및 신분관계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이에 곳곳에서 친생추정을 과학적·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DNA 일치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자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으나, 물론 이미 형성된 사회적 친자관계를 중시하는 입장에서 기존 법리가 타당하다는 견해도 여전히 많다.


    DNA 검사 결과면 입증이 끝난 것이 아닌가. 왜 이를 법률 영역으로 수용하기까지가 그리도 힘든 길일까. 

     

    2014년 7월, 일찍이 일본 최고재판소(전원합의체)에서‘DNA 검사에 의하여 혈연관계가 증명된 경우의 친생추정 범위’와 관련한 판시를 한 적이 있었다기에,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 일본 최고재판소 2014년 7월 17일 제1소법정 판결(判時2235號14頁, 判タ1406號59頁)
    한 부부가 결혼 후 아이 없이 동거하여 오던 중, 10년 만에 부인이 불륜 상대방인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임신을 한 뒤 남편 몰래 출산까지 하였다. 사실 남편은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친자가 아니었음을 알았음에도 부인을 용서하고 그 아이를 자신의 친자로 출생신고한 뒤 약 2년간 양육을 하여 왔으나, 부인이 아이의 친아버지와 계속 교제를 하다가 남편에게 발각되는 바람에 결국 부부는 협의이혼을 하였고, 아이의 친권자를 부인으로 정하였다. 이후 친모는 아이와 친아버지와의 DNA검사를 통하여 두 사람의 유전자형이 99.9999% 일치한다는 결과를 받았고 이를 증거로 삼아, 아이의 법정대리인으로서 법률상 아버지에 대한 ‘친자관계부존재확인의 소’를 제기하였다.
    이에 대하여 1심은, “법률상 부자관계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친자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이 분명하고, 가정의 평온을 위하여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시하며 청구를 인용하였다. 이후 원심인 2심 역시 같은 입장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최고재판소에서는 (3대 2의 근소한 차이였지만) 원심을 파기하면서, 법률상 아버지와 아이 사이의 친자관계가 추정된다는 판시를 하였다.

     

    비록 DNA검사와 같은 의학·과학의 발달로 생물학적 친자관계를 밝혀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하였지만,“생물학적 부자관계가 인정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더라도 신분관계의 법적안정을 유지할 필요가 당연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이로 인하여 친생추정이 반드시 사라진다고 볼 수 없다”는 기존의 견해를 유지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당사자가 일부러 가정의 붕괴를 꾀할 우려가 있다…우연히 DNA 검사를 해 본 결과 지금까지 신뢰하여 온 부자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혀진다면, 결국 아이가 태어났을 때 DNA 검사를 하지 않으면 평생 신분관계가 불안정한 상태가 될 수 있다”는 한 재판관의 보충의견이 오히려 일반 법감정으로는 기존의 반복적인 법리보다 설득력있게 느껴질 것 같기도 하였다.

     

     

    ○ AID 출생과 친생추정에 대한 대법원 공개변론
    한편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AID에 남편이 동의하여 출생한 자녀의 경우 민법 제844조 제1항에 따라 그 남편의 친생자로 추정되는지 아니면 친생자 추정의 예외가 인정되는지에 대하여 곧 공개변론을 열고 결론을 내릴 예정에 있다.

     

    위 일본의 최고재판소 사례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우리도 민법 제844조 친생추정 범위에 대하여 새롭게 규정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다가오는 공개변론의 피고들 측 대리인으로서 재판에 임하게 된 것이 몹시 영광인 가운데, 가정의 평안과 자녀의 복리가 재판의 궁극적인 지향점이 되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판결이 내려질 것을 기대해 본다.

     

     

    최유진 변호사(법무법인 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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