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 상시채용
  • 기사제보
  • 법조광장

    증거로 풀어내는 인권

    최영승 대한법무사협회장 (법학박사)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53633.jpg

    계몽시대의 자연법사상에서 인권은 하늘이 부여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신(神)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 인간이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인권개념은 인간의 존재의미와도 관련을 가진다. 그것은 시공(時空)을 초월한 개념이다. 이는 인간이 혹은 국가권력이 개인을 어떻게 예우해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준다. 우리 헌법을 지배하는 인간의 존엄성 조항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권문제를 거론하면 검찰, 경찰 등의 수사기관을 떠올리기 십상이다. 형사절차는 압수·수색, 체포·구속과 같은 강제처분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 행정절차와 달리 사법행정절차에서 인권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입법자도 사법기관의 자의(恣意)를 배제하기 위하여 강제처분 요건을 법으로 엄격히 규정짓고 있다.

     

    우리 헌법을 보면 형사소송법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유사한 조항이 있음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인권에 관한 한 법률의 사각지대를 헌법으로 직접 메우겠다는 주권자의 결단이 배어 있음으로 이해된다. 특히 신체의 자유 속에서 적법절차를 규정하고 있는데서 그동안 신체의 자유가 얼마나 유린되어 왔는지 알 수 있겠다. 고(故)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의 현장을 교훈사료로 보존하고 있는 서울 남영동의 경찰인권센터에 가면 그리 오래지 않은 지난 시대의 암울한 모습을 여과 없이 보고 느낄 수 있다.

     

    이 때문에 형사재판은 엄격한 증거재판주의를 취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이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제307조 제1항)'고 하면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같은 조 제2항)'고 하는 이 두 개의 조항이 형사소송을 지배하는 핵이다. 모든 형사소송은 증거(수집)에서 출발하여 증거(판단)로 끝을 맺는다고 할 수 있다.

     

    수사절차에서의 인권문제는

    증거 수집의 방법에서 나와


    그 결과 형사소송의 모든 것이 증거로 모아진다. 형사절차에서 증거의 지위를 이해하면 형사소송을 꿰뚫었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인신구속이라는 강제수사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구속영장의 신청(혹은 청구)이나 영장의 발부 등에 있어서도 일반인의 관심도와 달리 구속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이것도 재판을 위한 증거수집의 한 수단에 불과할 따름이다.

     

    신체구속을 통하여 도주나 증거인멸을 차단한 상태에서 증거수집을 원활히 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보면 구속이라는 것도 신체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문제는 차치하고 그 자체가 유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유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여전히 무죄로 추정된다.

     

    증거에는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이 있다. 증거능력과 증명력이 그것이다. 앞의 것은 증거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증거의 자격을 의미하고, 뒤의 것은 사건의 유죄를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증거의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증거능력은 증거판단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를 법관의 판단에 맡겨놓지 않고 법에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형사소송법상 증거수집의 일반원칙인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제308조의2)과 그 구체적 구현원칙으로서의 자백배제법칙(제309조) 및 전문증거배제법칙(제310조의2) 등에 관한 법 규정이 그것이다.

     

    증명력은 증거능력이 있은 다음에 비로소 문제된다. 증거능력 있는 증거를 대상으로 그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증명력에 있어서 형사소송법은 유죄판결을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정도의 증명을 계량화하기란 쉽지 않지만, 그 본고장인 영미의 예에 비추어 대체로 90~95%의 증거가치를 의미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고도의 개연성(high probability)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증거의 가치판단은 법관의 합리적 이성을 신뢰하여 그의 자유로운 심증에 맡기고 있다.

     

    여기서 수사절차에서 증거와 인권의 관련성 문제를 살펴본다. 형사소송이 증거재판주의를 취한다면 수사절차의 모든 것은 특정 사건에서 유죄인정을 위한 가치 있는 증거를(증명력) 어떤 방법으로 수집하느냐(증거능력)에 있다. 수사절차에서 인권문제는 바로 이 증거수집의 방법에서 나온다. 그 방법이 적법한가 혹은 위법한가에 따라 증거자격이 결정된다.

     

    적법절차 준수가 인권 지키는 길

     

    이렇듯 수사절차에서의 인권은 증거수집 절차에서의 방법 문제이다. 거기에 인권의 문제가 다 들어있다. 인적 증거수집을 위한 범죄혐의자 체포시의 미란다원칙 고지, 서류증거 수집을 위한 피의자신문시 진술거부권 고지 및 임의적 진술 확보, 물적 증거수집을 위한 영장에 의한 압수·수색 원칙 등이 인권의 법적 보장책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일상화된 준수의식이 곧 수사기관의 인권감수성이다. 결국 적법절차를 지키는 것이 인권을 지키는 길이다.

     

    이와 같이 수사절차에서 인권은 멀리 있는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모호한 개념도 아니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일상적으로 행하고 있는 평범한 업무 속에 모두 들어있다. 형사소송의 규정만 제대로 이해하고 잘 지키면 인권침해의 문제는 생길 여지가 없다. 물론 수사활동과 같은 강제력이 수반되는 준사법적 행정의 영역에서는 합목적성 이념이 강하게 지배하므로 태생적 한계가 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무리 형사절차의 합목적성 이념이 강하게 지배한다고 하여도 자연적 정의(natural justice) 이념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법의 영역에서 정의라는 눈에 보이지 않으나 매력적인 이념은 인간 본래의 모습이자 존재의의를 설명해 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지나친 목표달성주의에 치우친 합목적성 이념이 인권침해를 결코 정당화해 줄 수는 없음을 말해준다.

     

    오늘날 인권문제는 시대의 추세를 넘어서 문명국가의 척도로까지 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에게도 권위주의에 갇혀 개인의 인권이 경시되던 때가 있었고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인권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성과나 결과가 절차를 결코 덮을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인권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지고(至高)의 가치다. 그래서 어느 위대한 인권운동가의 말을 빌려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에게는 믿음이 있다. 우리 사법기관이 전향적 태도로 인권을 선도해 나가리라는 그런 믿음이 있다"고 말이다.

     

     

    최영승 대한법무사협회장 (법학박사)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