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 상시채용
  • 기사제보
  • 지금은 청년시대

    변호사 노동의 가치를 결정하는 관점

    김기원 변호사 (서울회)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53742.jpg

    서울대병원이 변호사를 신입간호사와 동일한 직급으로 채용한다고 한다. 이미 일반 사기업이 대리급으로, 정부부처 등이 6급으로 변호사를 채용했었다.‘신입간호사’라는 상징성에 의해 변호사 노동자의 대우 하향의 문제가 두드러지게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국제노동기구(ILO) 100주년 총회가 열리는 해이다. 국제노동기구는 1944년 5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총회에서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원칙을 천명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치가 변화하는 ‘노동시장’의 맥락으로 노동을 상품인 것처럼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 이 관점은 "변호사를 대리로 뽑아도, 6급으로 뽑아도, 신입간호사 대우로 뽑아도 지원자가 있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에 따라 변호사의 가치가 합리적으로 정해진 것이다"라는 해석에 따라 이러한 현상을 수긍한다. 

     

    그러나 직업 대우의 기준은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직업의 대우는 해당 직업의 중요성과, 해당 직업에서 능력이 발휘될 수 있는 잠재적인 성과의 폭에 따라서 당위적 관점에서 결정된다. 전투기 조종사는 장교, 헬기조종사는 준사관, 전차장은 하사, 소총수는 병사다. 이러한 직급의 차이는‘노동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다. 소총수는 담당자의 기량에 따른 성과 차이에 한계가 있고 기량이 높은 소총수의 성과를 다수의 소총수가 흉내낼 수 있다. 하지만 전투기는 고가여서, 다수의 조종사를 양성하는 것만으로는 소수의 정예 조종사의 성과를 흉내낼 수가 없다. 그리고 전투기는 3차원으로 고속 기동하므로 조종사의 기량에 따른 전투능력의 차이가 크다. 이 때문에 전투기 조종사에게는 나은 대우를 주어 더 높은 기량을 가진 사람이 전투기 조종사를 택할 유인이 있도록 설계한다. 이는 수요공급의 원리가 아니라 당위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노동의 가치는 그 업무의 중요성

     

    만약 어떤 이유로 전투기 조종사가 사회에 과다하게 배출된다면, 공급이 증가했다는 시장 논리에 따라 전투기 조종사의 대우는 내려가야 할까? 노동은 상품과 달리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으면, 가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구직 경쟁률이 높아지도록 설계된다. 노동의 가치는 그 업무의 중요성에 따라 당위적으로 정해져야 한다.

     

    과거에는 대졸자가 적었다. 현재에는 대졸자 수가 증가했고 회사들은 쉽게 대졸자를 채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대졸자의 처우가 내려가지는 않았다. 대신 입사경쟁률이 높아졌다. 과거에는 행정고시 수준의 고등교육을 받은 학생이 소수였다. 지금은 고등교육을 받기 쉬워졌고 행시 경쟁률이 상승했지만 행정고시의 대우가 내려가지는 않았다. 과거에는 석사학위만 있어도 교수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고학력자가 적었다. 이제 교수가 되려는 박사가 많다. 하지만 교수의 대우를 하락시키려는 시도는 없다. 사회는 능력을 가진 자를 교수로 유인하게 위해 2급 대우를 하는 것이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2급이 아니면 교수를 채용할 수 없으므로’ 2급 대우를 했던 것이 아니다. 이렇듯 노동은 상품이 아니며 노동 가치는 당위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 노동수요보다 공급이 많아지면, 노동의 가격을 시장원리에 따라 하락시키는 대신, 경쟁률을 높이는 방식이 선택되어야 한다.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다면

    구직 경쟁률이 높아지도록 설계

     

    그런데 변호사는 이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 노동을 상품으로 보는 관념하에, "직급을 낮춰도 지원하는 변호사가 있지 않느냐"라며 노동 가격을 하락시키는 일이 발생했다. 변호사의 업무는 분쟁과 의사결정, 관련된 고도의 사고능력과 법률지식을 요구한다. 기량의 차이에 따라 성과의 차이가 큰 업무를 자주 담당한다. 변호사는 교수나 연구자와 마찬가지로 매사 어렵고 높은 업무처리능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를 자주 담당하는 직업군이다. 변호사는 당위적으로 높은 대우가 주어져서 사회 인재가 유인되도록 설계되어야 하는 직업이다. 

     

    연봉이 높고 고용이 안정적이면서도 업무가 편하기로 유명한 공기업에 근무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편하고 연봉도 높다. 직원들은 명문대생, 해외유학파, 고스펙자들로 가득하다. 어느 정도의 능력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을 하지만 높은 처우에 만족한다.” 이런 현상은 IMF 이후 국내에 흔해졌다. 그리고 혹자는 이런 현상이 올바르기라도 한 것처럼, 현실을 직시하고 사회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노동의 가치는 당위적으로 정해져야 한다. 상대적으로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연구자나 변호사를 하고, 상대적으로 뛰어난 사람이 ‘안정적이고 편하고 좋은 직장’에 있도록 사회 구조를 설계할 당위나 필요성은 없다. 뛰어난 사람이 잠재 기량을 발휘할 기회가 적게 발생하는 업무에 배치된 인력배분 구조는 공리적으로 부적절하다. 뛰어난 사람이 기량을 발휘할 기회가 많은 업무에 위치하도록 적절한 유인을 발생시켜야 한다. 

     

    상품의 거래에는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된다. 노동의 거래에는 계약자유의 원칙이 무시되어야 한다는 관념에서 노동보호법과 최저임금법이 만들어졌다. 상품의 가격 담합은 경제법 위반이다. 하지만 노동의 가격 담합은 허용되어야 한다는 관념에서 노동조합법이 만들어졌다. 변호사의 노동 가치를 현실 시장원리에만 맡겨두는 것은 옳지 않다. 변호사가 아닌 사람들이 노동을 상품으로 바라보는 시장의 논리에 따라 변호사의 노동가치를 경향적으로 저하시키고 있다. 상품이 아닌 노동의 영역은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을 지키는 것만으로 공정해지지 않는다. 노동영역은 노동담합적 활동 및 인위적 조정이 적정 수준 이루어질 것을 전제하여 공정한 구조가 형성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변호사 노동가치의 경향적 저하 현상은 노동담합이 없는 분야에서 발생하는 전형적 현상으로 보인다. 노동의 영역은 노동담합을 하지 않는다면, 노동법규를 모두 지키더라도 공리를 극대화하는 공정 상태로 유지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교수를 선발할 때에는 ‘박사 중 뛰어난 박사’의 선발을 염두하며, 대졸사원을 선발할 때에는 ‘대졸자 중 뛰어난 대졸자’의 선발을 염두한다. 그러나 변호사를 선발할 때에는 ‘변호사 중 가장 못한 변호사’를 기준점으로 제시하며 대우를 하향하고 있다. 변호사의 노동을 상품으로 바라보는 관점에는 논리도 일관성도 없다. 

     

    그럼에도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을 것이다. "변호사 직군은 사회구조적으로 우수한 인재가 배치되어야 공리적으로 이익이므로 변호사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당위론적 주장은 감정적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발상으로 보이기 쉽다. 반면 "변호사 되는 것이 과거만큼은 어렵지 않으니 변호사 대우를 못 올려주겠다"는 공리적·사회구조적·거시적 담론과는 먼 주장은, 오히려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다는 개인의 성취의 공정성을 중점에 둔 미시적 정의 관념에 부합하여 수긍하고 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기원 변호사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