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 상시채용
  • 기사제보
  • 지금은 청년시대

    거짓말과 계약

    거짓말에는 관대할 수 있지만 계약 위반에는 엄격할 수 밖에
    계약 기능이 사회를 유지·형성

    서영민 변호사 (법무법인 정암)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54261.jpg

    인간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생각보다 훨씬 자주 크고 작은 거짓말들을 한다. 그런데 거짓말을 대별해보면, 화자의 의도를 객관적인 사실이나 분명한 기억과 같이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 없는 대상에 투영하여 이를 왜곡시키는 작용이라면 무엇이든 넓은 의미의 거짓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고, 나아가 그 성격이 상대방과의 신의를 저버리는 배신행위로 평가된다면 비난 받을 가능성까지 추가된 좁은 의미의 거짓말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는 후자의 좁은 의미의 거짓말이 문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특별히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전자의 넓은 의미의 거짓말까지 포함한다면 우리 모두는 단 하루도 거짓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들이라고 하여도 결코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필자는 거짓말 그 자체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그 의도가 얼마나 불순한지 그리고 그 결과가 나에게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지가 문제될 뿐, 어쨌든 다들 조금씩은 거짓말을 하게 마련이므로 그냥 인간은 언제나 거짓말을 하는 존재라고 속 편하게 생각해버리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게다가 원래부터 인간을 믿는 편도 아니었지만 변호사로 일하다 보니 인간을 믿기가 더 어려워졌는데, 상대방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의뢰인들조차도 변호사와의 비밀스러운 대화를 상시로 녹음하고, 심지어 외부인들 앞에서 비방하거나 약정을 대놓고 어기는 등 뒤통수를 치는 경우가 실로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누군가가 제아무리 스스로 진실함을 역설한다고 하더라도, 필자로서는 ‘그것은 당신 입장에서나 진실이고, 다른 사람, 특히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당신이 당신 내키는 대로 지껄인다고 생각할 테니 곧 당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나아가 필자는 누구에게도 진실을 강요하지 않고, 기실 강요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는 수사나 재판에 수차례 관여하다 보면 자연스레 얻게 되는 깨달음 같은 것인데, 그 내용인즉슨 애당초 불완전한 인식과 편향된 인지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전히 객관적인 진실에 기초하여 무결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특히나 불완전한 인식의 한계를 최대한 극복하기 위하여 국가는 고도로 숙련된 전문인력들(이른바 fact-finding 능력을 갖춘)을 판사, 검사, 변호사 등으로 선발·양성하여 법률사무를 처리하게 해왔지만, 그들이 논리와 상식이라는 미명 하에 편향된 판단을 내릴 위험은 오히려 증대되고 있다. 날 것 그대로의 진실보다 잘 재구성된 거짓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그들은, 일견 합리적이지 않은 설명을 늘어놓는 당사자들을 보고 걸핏하면 “그게 말이 돼요? 이 사람 지금 거짓말하고 있구만…”이라는 식의 핀잔을 가하곤 하는데, 솔직히 말이 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진실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필자로서도 의뢰인들에게 굳이 진실을 강요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그저 논리와 상식에 반하지 않은 즉, 말이 되는 소리를 하는 정도만을 바라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거짓말에 대해서는 관대한 반면 계약 위반에 대해서는 엄격한 편이다. 온통 거짓말쟁이들로 둘러싸인 세상에서, 이처럼 거짓말에 대한 체념적 태도와 진실에 대한 회의적 태도까지 취하고 있으니 어떻게든 권익을 지키고 손해를 피할 방도가 필요한데, 현실적으로는 계약에 의존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도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약속을 어기는 것이나 상황 모면을 위한 둘러대기 거짓말을 하는 것쯤은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한 일이라고 보아 일일이 탓하지 않고 눈감아주지만, 계약을 체결해놓고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신뢰조차도 담보할 수 없는 행위로 치부하여 미리 규정해 둔 위반에 대한 제재를 그대로 적용한다. 계약의 체결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여 이전까지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지만, 이후부터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위반, 침해, 불이행 기타 계약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가려내어 미리 규정해 둔 바에 따라 관용 없이 대응하는 방식인데, 계약상으로는 너무나도 당연한 원론적인 방식이지만 막상 실행하려면 매정하다는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다소나마 하지 않을 수 없는 껄끄러운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러한 방식이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로써 수많은 거짓말쟁이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거짓말쟁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계약을 체결할 때 미리 여러 조건들을 안전장치로서 포함시켜 두었으니 불측의 손해를 입을 까닭이 없으며, 혹 계약의 위반, 침해, 불이행과 같은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즉각적으로 해지, 담보의 실행, 대상의 청구, 반대급부 제공의 거절 등의 조치를 취하여 예상되는 손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매우 흥미롭고도 다행스러운 사실은, 거짓말쟁이들은 새로운 거짓말을 지어내느라 늘 잔머리를 바쁘게 굴리는 탓인지 의외로 섭섭함을 쉽게 털어버린다는 것이다. 때로는, 수많은 인간들이 그토록 자주 크고 작은 거짓말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공동체로서의 사회를 형성·유지하면서 구성원들 서로간의 신뢰와 유대를 지켜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나마 계약이 제 기능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간의 속성을 이해하면서도 인간들로 인하여 손해 보지 않고 그들과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위에서 언급한 필자의 방식을 한번쯤 고려해볼 것을 추천하는 바이다.

     

     

    서영민 변호사 (법무법인 정암)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