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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Walk in the Clouds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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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명하지만, 앙코르와트 외에 많은 크메르 제국의 사원 유적이 동남아시아 곳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중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태국과 캄보디아 국경 부근에 위치한 프레아 비히어 사원이다.

     

    해발 525미터의 절벽 위에 자리잡은 이 11세기 힌두교 사원은, 장방형 피라미드 형태인 다른 사원들과 달리, 800미터의 직선 오르막 진입로에 산문(山門)과 성소(聖所)가 결합된 형태의 건축물(Gopura) 5개가 차례로 서 있는 독특한 구조다. 방문객은 다음에 마주칠 신전에 대한 기대와 경외감을 품고 계속 능선을 오르다가 마침내 마지막 성소에 이른 뒤 그 절벽 아래 펼쳐지는 광활한 대평원의 모습에 압도된다.

     

    이곳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점은 외국 관광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이 사원을 둘러싼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의 해묵은 영토분쟁 탓에 일반인의 접근이 최근에야 허용됐기 때문이다. 만일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이 법률가라면 이 사원이 1962년 이래 두 번의 국제사법재판소 판결을 거쳐 캄보디아 영토로 최종 확정된 사실에도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캄보디아는 1959년 태국이 실효 지배하고 있던 이 사원이 자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였다. 캄보디아 측은 우리에게 애치슨 선언으로 알려진 전 미 국무장관 애치슨을, 태국 측은 저명한 국제법학자 필립 제섭을 대리인으로 선임하였는데, 제섭은 도중에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이 되는 바람에 사임한다.

     

    이 사원은 양국이 국경으로 삼고 있는 당렉 산맥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현장에 가보니 사원의 입구가 정확히 태국 쪽을 향하고 있어 접근이 쉬운 반면, 캄보디아 쪽은 가파른 절벽이어서 사원 건립자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제사법재판소는, 캄보디아를 식민 지배하던 프랑스인들이 1907년경 태국 정부와 협력 아래 작성하였다는 출처 불명의 지도상에 이 사원이 캄보디아 영토로 표시되어 있고, 태국 정부가 이 지도를 받고도 장기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사실을 근거로 캄보디아의 손을 들어 주었다.

      

    양국의 자존심을 건 이 재판에 대한 태국 국내의 반응은 격렬하였다. 일부 시민은 방콕의 캄보디아 대사관을 공격하고 언론은 캄보디아 왕을 모욕했으며 소송비용 모금운동도 벌어졌다. 패소 후에는 대규모 길거리 시위가 벌어졌고, 태국 정부는 국제회의 참석을 거부하였으며, 재판장의 국적인 폴란드 사람들은 비자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결국 태국은 국제사회의 압력에 굴복하여 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태국 입장에서, 프랑스가 건넨 지도에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것은 강대국의 식민 지배에 맞서 동남아시아 유일의 독립국으로 남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고, 재판 수행 역시 자국의 능력보다는 외국 저명 학자에 주로 기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점에 아쉬움이 있다고 여겨진다.

     

    협상 과정에서 ‘BATNA(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는 매우 중요하고, 그 중 ‘법적 해결’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이다. 국제 분쟁의 법적 해결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나라 자체의 역량을 키우고 이를 시의적절하게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천상의 신전에서의 발걸음이 마냥 여유롭지만은 않은 까닭이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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