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좌관’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국회에 근무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국회의원 비서관으로 채용되면서 메시지 작성이 주요 담당 업무 중 하나가 된 후, 페이스북 글쓰기를 그만두었다. 필자의 글이 조금이라도 의원에게 누가 될 수 있는 여지를 없애고 싶었다. ‘나’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것이 보좌진이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인 도리라고 생각했다.
대신 의원을 위해 삶의 모든 경험과 지혜를 한 방울까지 다 짜내서 메시지를 썼다. 다행히 의원은 필자의 글을 좋아해 주었다. 학부 때 읽었던 책들, 스님·신부님에게 들었던 지혜의 말씀들, 몇 날 며칠을 고민했던 철학적 문제들, 수유리 살 때 찾아뵈었던 가인 김병로 선생 묘소의 비문까지. 국정감사장에서 법사위원장 모두발언·마무리 발언의 형식으로, 대법원 주최 가인 추념식에서는 추념사의 형식으로 퍼져 나갔다. 때로는 법무부 장관을 호되게 나무라기도 하고, 때로는 양심적인 검사를 지키는데 힘을 보태기도 했다. 아침에 필요한 글이 새벽까지도 나오지 않아 가슴 졸이는 시간의 연속이었지만, 분명 행복한 글쓰기였다.
햇수로 3년 동안 많은 글을 썼지만, 모두 의원의 것일 뿐 필자의 성과물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비서관의 임무는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보좌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의원만 존재할 뿐 비서관은 가려진 존재일 수밖에 없다. 비서관이 작성한 수많은 글 중에서 의원에게 선택 받은 ‘메시지’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의원의 입을 통해 세상에 퍼져나가고 때로는 세상을 바꾸는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동일한 ‘메시지’라도 어떠한 ‘메신저’를 통해 전달되느냐에 따라 그 효과의 차이는 매우 크다. 사람들은 ‘메시지’ 만큼이나, ‘메신저’가 살아 온 삶의 과정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이름으로 2주에 한 번씩 고정 칼럼을 쓰고 있다. 얼굴 없는 ‘메시지’ 작성자에서 ‘메신저’가 된 것이다. 메시지과잉의 시대에 남들과 비슷한 ‘메시지’를 하나 더 생산하는 것은 지면의 낭비에 불과하다.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과 미래에 대한 ‘영감’이 담긴 ‘메시지’를 써 왔는지 반성한다. 필자의 ‘메시지’에 사람들이 귀 기울일 수 있는 신뢰 받는 ‘메신저’로서의 삶을 걸어가기를 소원한다.
정지웅 변호사 (법률사무소 정(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