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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인프라의 발달과 역사의 흐름

    - 전자증권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을 기원하며 -

    차상진 변호사 (법무법인 이랑)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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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 중부 브뤼셀에서 남동쪽으로 약 20km 떨어진 곳에는 동서로 약 4km에 이르는 완만한 구릉지대가 펼쳐져 있다. 1815년 6월 엘바 섬에서 돌아온 나폴레옹을 저지하고자 프랑스로 진격하던 영국의 웰링턴 공작은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이곳까지 후퇴하여 삼림을 뒤로 하고 포진한 뒤 몇 채의 농가를 밤새 요새화하였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는 나폴레옹의 군대가 이곳을 향해 진격해 오고 있었다. 워털루 전투로 불리는 이 사건은 당시 유럽 사회의 패권을 놓고 다투던 영국과 프랑스 군대의 무력충돌이지만, 동시에 영국 금융 시스템과 프랑스의 금융 시스템의 대결이라고 보기도 한다.

     

    전쟁 수행을 위해서는 많은 자금을 조달하여야 하는데 영국은 당시에 이를 콘솔국채를 발행하여 조달하였고 채권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을 금화로 바꾸어 이를 필요한 곳에 보급하였다. 반면, 프랑스는 전쟁자금을 정복지에서의 세금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였다. 영국은 워털루 전투에서의 승리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나폴레옹 전쟁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남아메리카 포토시의 은광을 통한 막대한 자금과 무적함대로 대표되는 강력한 무력을 자랑하던 스페인이 작은 나라인 네덜란드의 독립을 저지하지 못한 이유도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세워졌고 네덜란드가 이를 통하여 독립전쟁 자금을 조달하였기 때문이다. 아마 종이증권에 권리를 화체시키고 이를 교부를 통하여 양도한다는 유가증권에 의한 권리의 유통과 결제가 불가능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와 같이 금융시장 인프라의 발달은 국가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핀테크와 블록체인 열풍이 있는 것 또한 이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자금 결제 부분에서 핀테크가 확산되고 있다면, 증권결제 부분에서는 전자증권제도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OECD국가 중 대부분이 전자증권제도를 도입하여 운용 중이며,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전자증권제도를 전면적으로 시행하여 운용하고 있다.

     

    워털루 전투로부터 200년이 흐른 2015년 6월 금융위원회는 '증권 등의 전자등록에 관한 법률'이라는 법률명으로 입법예고 하였고, 전자증권제도 도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끝에 2019년 9월 전자증권제도가 시행된다. 전자증권제도는 그동안 종이에 인쇄된 유가증권을 계좌부 상의 전자등록으로 대체하는 제도이다. 제도 시행을 위하여 실물증권 보유자는 8월 21일까지 한국예탁결제원, 국민은행, 하나은행 중 어느 한 곳에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증권을 제출하고 예탁하여야 한다.

     

    이번에 도입된 전자증권제도는 전자문서방식이 아니라, 전자등록방식이다. 전자어음법의 경우 전자문서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전자문서방식의 경우 종이를 전자문서로 대체한다는 개념에 가깝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에 의할 경우 자본시장에서의 대량의 거래에 따른 결제가 매우 곤란해지므로 이번에 도입된 전자증권제도의 경우 자본시장에서의 인프라로서의 기능을 고려하여 전자등록방식으로 도입되었다.

     

    필자가 한국예탁결제원 재직 당시 전자증권제도 입법 TF팀에서 전자증권제도를 준비하며 법률가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권리가 전자등록되는 것이냐 아니면 증권이 전자등록 되는 것이냐”, “권리가 전자적 장부에 화체되는 것이냐, 화체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전자기록의 변경을 통하여 권리의 유통이 가능하냐”는 질문 들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입법과정 중에서 이러한 쟁점에 대한 논의결과는 첫째, 전자증권법은 다른 법률에 의하여 발생된 권리를 전자등록하도록 하고 있으며 둘째, 전자문서 방식이 아닌 전자등록방식이기 때문에 화체된다는 스킴으로 제도가 설계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권리가 종이문서나 전자문서에 화체되지 않고 전자등록된다는 개념이 현재의 법률가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 독일에서 증권예탁결제제도가 도입될 당시에도 혼장임치된 증권의 공유권을 취득한다는 예탁의 법리나, 증권의 교부를 계좌대체로서 갈음한다는 계좌대체에 의한 결제제도 모두 당시 법률가들에게는 생소하여 반발이 있었지만, 지금은 자본시장이 존재하는 나라라면 보편적으로 증권예탁결제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증권예탁결제제도 없이 자본시장에서의 증권유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예탁결제원은 1990년대 말부터 전자증권제도를 준비해왔으며, 오랜 기간 준비된 만큼 완성도 높은 모습으로 제도가 준비되었다. 물론 처음 도입되는 제도인 만큼 아무리 오랜 기간 준비하였다 하여 완전무결할 수는 없고 권리를 전자등록한다는 개념은 현재 법률가들 중 일부에게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개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제도운영에서 개선하여야 할 점이 나타난다면 금융위원회와 법무부, 제도운영기관인 한국예탁결제원이 오랜 기간 애착을 갖고 준비한 제도인 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개선하여 나갈 것으로 보이며 '권리의 전자등록'이라는 다소 생소한 개념은 법이론적인 측면으로서 이는 우리 법률가들이 해결하여 나가야 할 영역이다.

     

    워털루 전투의 승리가 영국의 전성기를 여는 초석이 되었듯 전자증권제도의 도입이 우리나라 자본시장 전성기를 여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

     

     

    차상진 변호사 (법무법인 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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