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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겨루기

    박지연 고법판사 (서울고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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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겁이 많다. 일상 중에 자주, 작게 또는 크게 경계심을 작동시킨다. 주변을 경계하려니 삼감이 예민하다. 안 맡아도 될 냄새를 잘 맡고, 들을 필요 없는 소리도 잘 들리며, 맛에도 민감하다. 부족한 시력은 계속 수련 중인 촉으로 보완할 예정이다.

     

    무서운 것에는 피하는 방법과 맞서는 방법이 있다. 나는 일상에서 자연스럽고 아주 쉽게, 피해도 되는 것은 피하는 쪽을, 피할 수 없는 것은 맞서는 쪽을 선택해왔다. 이 기회에 곰곰 생각해 보니, 피해도 되는 것과 피할 수 없는 것은 결국 내 의지에 의한 선택으로 정해졌을 뿐, 미리 정해진 것은 없었다. 

     

    그런데 우리집 그녀에게는 내 선택의 전략이 통하지 않는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회피할 길 없는 운명적 상대이고, 맞서기에도 너무나 강력한 상대이다. 조그맣던 유년기에는 나를 자발적 시종으로 부리더니, 점점 커지면서 나를 대항하여 싸운다.

     

    그녀의 생각과 다른 내 생각은 모두 고정관념으로 매도된다. 초중고 10대 여성이 화장을 해도 되느냐 안 되느냐를 두고 1년 넘게 지루하게 대립 중인데, 그녀는 '해도 된다'이고, 나는 '하면 안 된다'이다. 그녀는 하면 안 된다는 근거가 없다며, 내 의견은 고정관념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나는 딱히 반박할 말이 없다.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나의 내심은, 실은, 하면 안 된다가 아니라 하지 말라이다. 근거? 그런 것 없다. 단지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하므로, 반대한다. 익숙함에 익숙한 기성의 나의 주장은 아직 익숙한 것이 없는 미성의 그녀에게는 고정관념이 된다.

     

    고정관념은, 숙명적으로 기성세대에게 속하므로, 미성세대를 지배하는 권력 속에 산다. 때로는 애주가 되어 취하게 하고, 힘을 쓰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취한 자의 무기는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다. 

     

    아직까지는 그녀보다 내가 힘이 세다. 취기에서 벗어나 보려니, 머리가 아프다. 무엇이 먼저 아픈 건지 모르겠지만, 마음도 아프다. 10대의 화장이 기정사실이 되어 버리면, 나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시, 이미 기정사실이 된 것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미성세대가 그렇게 사고를 치나 보다. 기정사실로 만들려고.

     

     

    박지연 고법판사 (서울고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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