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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권남용죄 일고(一考)

    구욱서 변호사 (법무법인 다래)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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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형법 제123조가 규정하는 직권남용죄의 피해자(범죄 객체)에는 공무원도 포함된다. 그런데 소속이나 분장 업무가 다른 경우가 아니라 상급자와 일체가 되어 공무를 수행하는 경우에도 하급자가 상급자의 불법적인 명령이나 지시에 대하여 그 불법성을 충분하게 인식하면서도 상급자의 명령을 거역하면 단지 자신에 대한 인사상의 불이익 등이 염려되어 부득이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경우 그 주장을 수용하여 상급자가 그를 피해자로 삼아 그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법률상 따를 의무가 없는 불법적인 명령의 수행)을 하게 하였다는 이유로 상급자만을 직권남용죄로 처벌하는 것이 옳은가?

     

    2. 오토 아돌프 아이히만은 1932년 나치 친위대에 들어가 중령(최종계급)까지 된 사람으로서, 친위대 책임자인 중장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로부터 '유럽 유대인의 전멸이 나치 독일의 공식적 정책'이라는 명령을 받고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이주시키는 임무에 전적으로 관여한 인물이다. 모사드에 의해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다. 아이히만은 법정에서 자신은 나치 법률 아래에서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았고, 죄를 지었더라도 명령을 성실히 집행했을 뿐이라고 강변했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방청한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관한 보고서-'에서, 그가 무척 평범한 인물이었고, 유대민족에 대한 증오심에서가 아니라 그저 출세하기 위하여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한 경위를 지켜보고, 한마디로 "악이란 시스템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결론지었다. 즉, 한나 아렌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시스템 속의 톱니바퀴처럼 주어진 일을 수행한 사람이야말로 아이히만처럼 극도의 악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인간이 되느냐, 악마가 되느냐는 그에게 '악의'가 있느냐가 아니라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3. 이와 관련하여 정치·사회철학자 이진우 교수는, 저서 '한나 아렌트의 정치강의' 79쪽에서, "내가 악행에 관여한 것은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지,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역시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자신이 행위의 주체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공정사회의 실현이라는 목적으로 적폐 청산을 추진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명백한 위법행위를 저지른 고위 공직자의 사법처리는 피할 수 없지만, 단지 정부의 방침을 따랐을 뿐인 중하위 공직자들을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이 대표적이다. 정부의 정책이 오류일 뿐만 아니라 누가 보더라도 부당하고 위법적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상부의 지시와 명령을 그대로 따라도 괜찮은 것인가? 이러한 현상을 묵인한다면, 일상적 아이히만을 양산하는 것은 아닌가?”라고 지적한다.

     

    4. 하나의 사례(서울고법 2018노1942판결의 사실관계를 최대한 축약하였음)를 보자. 군사법경찰관 B는 사이버사령부 부대원 甲으로부터 소속 단장이 대선 개입 지시를 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받아 낸다. 국방부조사본부장 A는 군사법경찰관 B, C, D에게 甲으로부터 기존 진술은 거짓이라는 취지로 번복하는 진술을 받고, 부대원 乙로부터는 소속 단장으로부터 대선 개입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받으라고 지시한다. B는 부당한 지시를 따를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함으로써 보직 변경되어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 권한이 박탈되었고, C는 甲으로부터 번복 진술을, D는 乙로부터 소속 단장으로부터 대선 개입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는 요지의 진술을 각각 받아 냄으로써 명령을 수행하였다.

     

    이 사례에서 A에 대한 처벌 필요성 때문에 C, D를 '의무 없는 일'을 한 피해자로 삼는 것이 과연 직권남용죄에 대한 올바른 해석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불법적인 지시 내용을 그대로 수행함으로써 법치의 핵심인 사법작용의 왜곡에 일조한 C, D가 피해자가 된다는 것은 '아이히만의 강변'을 수용하는 것과 흡사하기 때문이다. C와 D는 수사 과정에서 인사상의 불이익 등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불법적인 명령인데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하였다. 그러나 C, D의 주장을 반대로 해석하면 인사상의 이익을 기대하고 불법적인 명령을 알면서도 착실히 수행했다는 말이 된다. 이진우 교수의 지적도 바로 이와 같은 지점일 것이다.

     

    5. 또 하나의 사례(대법원 2007. 6. 14. 선고 2004도5561판결의 사례를 축약하였음)를 보자. 거액의 뇌물 사건에 대하여 이미 수개월간 압수수색 등으로 각종 범죄의 단서 및 이를 뒷받침할 물적 증거까지 확보된 상태에서 검찰총장 A는 총장 취임식을 전후하여 관할 검사장에게 내사종결 처분을 지시하였다. 수사검사 B의 소속 부장은 '사실관계를 모두 밝혀 놓고 처박았는데, 그러니 검찰이 욕먹지, 총장님 말씀을 무시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하면 좋지'라면서 B에게 검사장의 의사를 전달하였고 B는 결재를 받아 내사종결처리를 하였다. A는 검찰총장의 직권을 남용하여 수사검사 B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직권남용죄로 기소되어 유죄가 확정되었다. 

     

    이 사례에서 A를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필요성 때문에 B를 '의무 없는 일'을 한 피해자로 보아야 할 것인가? 이 판례의 사실관계에서 B는 A의 내사 종결 지시를 결재권자들로부터 전달받았으며, 내사 중단을 하면서 A나 결재권자들로부터 현실적으로 구체적인 어떤 압박 등을 받았다는 자료는 없다. 설령 어떤 압박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앞선 사례의 군사법경찰관 B와 같이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수는 없었을까? 단순히 총장의 지시이고, 결재권자들도 모두 그 지시를 따르고 있으니, 마음 편하게 직무를 유기한 것은 아닐까? B는 수사책임자로서 수사팀의 수사관들을 지휘하여 커다란 범죄를 인지하고도 묵살한 행위의 주된 주체이다. 그런데도 B를 피해자로 하여 A를 직권남용죄로 처벌한 위 대법원판결에 대하여는 '일상적인 아이히만'의 양산이라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더구나 B는 그저 중하위직 공무원이 아니라 수사의 주재자 및 독립관청으로서의 지위에서 스스로 책임을 져야하는 고위직인데도 말이다. 

     

    6. 공무의 적정한 수행은 상급자와 하급자가 일체가 되어야 적절하게 수행할 수 있다. 특히, 수사기관의 결재권자와 수사책임자는 그 일체성이 어느 공무집행보다 강하게 작동한다. 불법적인 명령을 지시한 사람도, 그 명령을 집행한 사람도 국민에 대하여는 책임을 져야한다(헌법 제7조). 민주주의국가에서 다수결의 조작과 관련된 행위를 한 자를 가벼이 볼 수 없고, 법치주의국가에서 사법작용을 왜곡하는 행위 또한 무겁게 처벌되어야 하더라도, 이들 중 특정 상급자를 처벌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그와 함께 공범자가 되어야 할 사법 공무원을 피해자로 삼는다는 것은 더욱 부당하지 않을까? 

     

    공무원이 피의자가 되느냐, 피해자가 되느냐는 하늘과 땅의 차이와 같다. 수사기관의 선택에 따라 피의자와 피해자의 기로에 선 공무원이 피해자가 되기 위한 유혹에서 오염된 진술을 하고, 이를 근거로 상급자를 처벌한다는 것도 사법 정의에 비추어 용납할 수 없다. 불법적인 지시를 알고도 수행한 공무원은 그 형사처벌과 무관하게 공직에서 배제되는 것이 철칙이 되어야만 청산되어야 할 적폐도 적게 쌓일 것이다. 공직 사회에 쌓인 적폐는 나중에라도 청산되는 것이 바람직 하긴 하지만, 청산할 적폐를 처음부터 아예 쌓지 않거나 적게 쌓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

     

    7. 법치주의국가에서 공무원에 대한 명령권자는 '법률'이지 '사람'이 아니다. 법률상 복종할 의무가 없는 상급자의 위법한 지시를 수행한 하급자는 '법률에 충성'하지 않고 '사람에 충성'했기 때문에 상급자와 마찬가지로 충성의 대상인 '법률'을 위반한 것이다. 즉, 피해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에 충성'할 수밖에 없는 사정(구체화된 징계 위협이나 인사조치 등)이 있었다면 피해자로 평가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헌법상의 권력분립의 이념, 즉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일체가 되어 공무를 수행하는 상·하급자 사이에서도 그 기능을 발휘해야만 진정한 법치국가가 될 수 있다.

     

    8. 현재 전직의 대통령과 장관은 물론 대법원장까지 직권남용죄 등으로 구속되어 재판받고 있는 우리나라는 외형상 법치주의가 확립되어 있는 국가이다. 상관이라고 하여 불법적인 명령을 쉽게 할 수 있는 나라는 이미 아니다. 국리민복을 위해 포괄적으로 정책적인 결정이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라면 지도자가 추구하는 이상과 가치를 포함하여 그 지도자에게 충성할 필요가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사법(司法)을 관장하는 공무원은 상급자가 아니라 오직 '법률과 객관적 양심에만 충성'해야 한다. 불법적인 명령을 내린 '사람에 충성'한 사법 공무원은 그 '사람과 함께' 법적 운명도 같아야 하지 않을까? '법률'에만 충성해야 할 검사와 사법경찰관, 법관은 불법적 명령을 거부하여 일에서 배제된 경우에만 직권남용의 피해자로 봐야 하지 않을까? 사례로 든 군사법경찰관 B와 같은 이들은 우리의 법치를 한층 끌어올릴 것임에 틀림없다.

     

     

    구욱서 변호사 (법무법인 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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