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 상시채용
  • 기사제보
  • 법조광장

    대법관 자리의 무게

    이용우 전 대법관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55848.jpg

    강제징용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후폭풍이 거세다.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는 우리 경제의 추락을 위협하고 있고 우리 정부는 '평화경제'를 외치면서 북한과 경제협력을 하여 일본을 따라잡자고 한다. 북한과 한 편이 되어 일본과 대결하자는 것으로 들린다. 나아가 정부는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선언으로 한미일 삼각안보체제에서의 이탈을 시도하고 있고, 이에 대하여 미국은 그것이 한국의 방어를 복잡하게 하고 주한 미군에 대한 위협을 증가시킬 수 있다면서 노골적인 실망을 표명함으로써 한미 간의 갈등도 표면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의 전개를 이 정부가 취한 그간의 대북정책과 합쳐 보면, 우리 정부는 이 판결을 계기로 하여 우리의 안보 노선을 해양세력으로부터 이탈하여 대륙세력 쪽으로 이동시키는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바야흐로 이제 우리는 민족의 운명이 좌우되는 중대한 변곡점을 맞은 것 같다. 과연 대한민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이며 우리 국민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상황의 변화는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이 그 계기를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한일 간의 모든 청구권 문제가 포괄적으로 해결되었다는 믿음이 널리 받아들여져 왔고, 노무현 정부를 포함한 역대 정부에서도 그동안 피해 국민에 대해 불충분했던 보상은 특별법의 제정으로 국내에서 해결해 왔다. 그럼에도 오늘의 대법원은 우리의 외교 안보 노선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에 대하여 '사법자제'의 원칙을 외면하고 지난 수십 년간의 관행에서 벗어나 일본에 대하여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판결을 함으로써 오늘의 사태를 불러왔다. 대법원으로서는 판결당시 위와 같은 후폭풍의 형태와 강도까지는 예상할 수 없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판결로 인하여 일본과 사이에 엄청난 외교적 갈등을 일으키고 그로 인하여 우리 경제와 안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판결을 내린 대법원은 그 판결의 결과로 야기된 오늘의 상황에 대하여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대법원이 이 사건 판결을 함에 있어 과연 이 판결이 필연적으로 불러 오게 될 일본 측의 반작용과 이로 인한 외교·안보상의 어려운 문제까지도 함께 고려하여 결론을 내린 것인지 궁금하게 생각한다. 아무리 일본 측의 반작용이 정의롭지 못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불가피하게 마주해야 할 현실이 될 수 있는 이상 이러한 후유증까지도 고려하여 판결을 하는 것이 최고법원인 대법원의 바람직한 자세일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혹시 대법원으로서는 국가의 외교·안보 전략까지 고려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공식적으로 정부 관계부처의 의견을 들을 수도 있고 사법자제의 원칙을 되돌아볼 필요도 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이에 의하지 아니한 채 독자적으로 지난 수십 년간의 관행을 깨고 우리의 외교 안보의 틀을 바꾸게 하는 판결을 하였다. 만일 대법원이 판결의 후유증에 대한 고려는 하지 아니한 채 기록 속의 정의만 찾아 판결을 하였다면 이번 판결의 의미는 크게 축소되어야 한다. 정부는 더 이상 대법원 판결만을 내세우고 스스로의 책임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이를 하나의 참고자료로 하여 국익을 위한 별도의 정책적 판단을 한 후 보다 융통성 있는 자세로 사태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다. 만일 대법원이 판결의 후유증에 대하여도 고민을 하였다면 그 후유증을 감수하면서도 그러한 결론을 내려야만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그 이유를 알아야만 대법관들이 고민한 생각의 깊이를 알 수 있고 이 판결에 대한 올바른 평가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이 판결과 이를 활용하여 이 정부가 추진해 나가는 외교·안보 전략의 방향 전환이 궁극적으로 자유통일과 번영으로 가는 길이 된다면 대법원은 이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소멸과 경제의 몰락으로 가게 된다면 대법원은 그 계기를 제공한 책임을 져야할 것이다. 이 판결은 그 중대성으로 보아 민족사에 길이 남게 될 것이고 여기에 관여한 대법관들의 이름 하나 하나는 역사에 기록되어 후세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어찌 두렵지 아니한가. 그만큼 대법관 자리의 무게는 무거운 것이다.

     

     

    이용우 전 대법관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