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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nd Justice for All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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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과 탈레반 등이 관여한 아프가니스탄 내전 관련 국제형사재판소의 미군과 CIA에 대한 수사가 가시화되자, 올해 초 미 국무부 장관은 검사를 비롯한 재판소 구성원들의 미국 비자를 취소하겠다고 공언하였다. 그 후 국제형사재판소 전심 재판부는, 관련 당사국이 협조하지 않아 성공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수사를 개시하는 것은 ‘정의(interest of justice)’에 반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검사는 이러한 결정이 재판소가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다투었고, 결국 재판소는 최근 검사의 항고제기를 허가하였다.

     

    뉘른베르크 재판 당시 변호인들은 ‘Tu quoque(당신도 마찬가지)’라는 항변을 하였다. 즉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 못지 않게 많은 범죄를 저지른 승전국의 법관들이 재판을 하는 것은 위선적인 ‘승자의 정의(victor’s justice)’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아니하였다. 그 후에도 승전국이나 거부권(veto power)을 가진 강대국이 국제형사재판에 회부된 사례는 발견할 수 없다.

     

    이러한 이중기준(double standard)은 다양한 층위에서 나타난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으로 돌아가 보면, 아이히만은 ‘사유’가 부족했다기보다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신봉하면서 한치의 빈틈 없이 공무를 완수하려 하였던 반면, 늘 자유로움을 추구했던 아렌트는 지적 사유와 공감 능력이 비범했던 나머지, 스승이자 연인인 하이데거가 나치 부역자이자 유부남인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와의 사적 관계를 계속 이어가려 시도하였다.

     

    홀로코스트에서 극적 생존 후 프랑스의 법관, 보건부장관 등으로 재직하면서 여성인권신장에 큰 기여를 한 프랑스계 유대인 시몬 베유는, 독일계 유대인인 아렌트의 주장은 나치의 책임을 보편 책임으로 녹여내어 비인격적으로 만들려는 절박한 독일인의 해법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하는 한편, 모국인 프랑스는 많은 ‘의인’들의 도움으로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취지의 다소 의문스런 주장을 하였다.

     

    이처럼 ‘현실 정치(Realpolitik)’가 압도적으로 지배하여 온 국제사회에서, 주로 패전국이나 제3세계 국가에 대해 책임을 물어 온 국제형사재판의 정당성에 대한 도전이 계속되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 국제형사재판은 어떻게 대응하여 왔을까?

     

    먼저,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 극히 어렵다면, ‘절차적 정의’를 통하여 최소한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국제형사재판이 각국의 재판에서는 간과될 수도 있는 세밀한 절차까지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이다. 다음으로는 인권이나 피해자 권리 등과 같이 각국의 특수한 이해관계로 쉽게 좌우할 수 없는 상위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를 재판에 반영하는 작업을 들 수 있다. 국제 강행규범(Jus Cogens)이나 보편적 관할권(Universal jurisdiction)의 정립과 확산을 위한 노력이 이에 해당한다.

     

    탈 진실(Post-truth) 시대의 사법기관 역시 비슷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나치 협력자인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정치의 본질을 적과 동지의 구별에서 찾았는바, 이러한 전제에서는 어떠한 사법판단이든 승자의 정의일 수 밖에 없다. 작은 절차적 정의에까지 주목하고, 진영논리를 뛰어넘는 보편적 가치를 판단에 적극 수용함으로써, 사법은 소극적 현실론을 극복하고 모두를 위한 미래의 희망을 보여줄 수도 있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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