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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참여재판 단상(Ⅲ)] 합리적 의심의 크기와 무게

    김정민 부장판사 (수원지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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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 형사소송법 제307조 2항이다. 사실의 인정은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는 것을 규정한 제307조 1항과 함께 ‘증거재판주의’를 천명하고 있다고 해석된다. 그리고 이어서 형사소송법 제308조는 증거의 증명력은 법관의 자유판단에 의한다는 원칙인 ‘자유심증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형사재판에 관련된 원칙 중 대표 선수인 위 두 조문을 해석하면 결국 ‘어떠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의 실질적 가치를 법관이 자유롭게 판단하여 얻은 심증형성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범죄사실을 인정하여 유죄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원칙이기도 하고 종래 학설과 판례로도 확립되어 온 이치이지만 심증형성의 정도에 관한 부분은 2007년 6월 1일 개정된 법률에 제307조 2항을 신설하면서 규정되었으니 이것이 형사소송법에 명문화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한편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및 그 규칙은 재판장이 법정에서 배심원에게 설명하여야 할 사항에 위와 같은 형사소송법 제307조(증거재판주의), 제308조(자유심증주의)의 각 원칙을 포함시키고 있다. 결국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는 사건에서 나름대로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배심원들도 이 부분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니 역시 형사재판의 여러 원칙 중 대표선수답다. 그런데 도대체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란 어느 정도를 의미하는가. 너무나 난해한 말이 아닐 수 없다. 국민참여재판에서 재판장의 필수 설명사항인 이 부분을 배심원들에게 이야기하면서 항상 고민이 되었다. 합리적 의심 자체의 크기도, 무게도 말해줄 수 없는데 그렇다고 적당히 설명해서는 이 난해한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렵다는 그야말로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것이다. 법률문외한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일반 국민들인 배심원들에게 이 원칙을 최대한 잘 이해시킬 뾰족한 설명 방법이 없을까.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은 한 손에 저울을 들고 있으면서도 합리적 의심의 크기나 무게를 계량해 주지 않고 무얼 하나. 답답한 마음에 애꿎은 동상 탓이다. 흔히 범죄 수사나 유죄 입증 과정을 퍼즐을 맞추어가는 것에 비유한다. 그래서 그런지 국민참여재판에서 합리적 의심의 정도를 설명하는 수단으로 이른바 ‘코끼리 퍼즐’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커다란 코끼리 그림이 그려진 퍼즐 장난감은 50개의 퍼즐조각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퍼즐조각들 중 6~7개만 맞추었을 때는 그냥 회색이 칠해진 조각들이 흩어져 있구나 싶다. 20여개를 맞추자 회색의 기다랗게 늘어진 무언가가 코끼리 코인가 싶기도 하지만 단정할 수 없다. 그러면 44~45개를 맞추면 어떠할까. 몇 부분 구멍이 있지만 회색몸통과 커다란 귀와 기다란 코.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코끼리라고 말할 것이다. 이때 이것을 코끼리라고 하지 않고 의심하는 것은 더 이상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44~45개의 퍼즐을 맞춘 정도라면 합리적 의심이 없는 증명이 되었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코끼리 사진을 퍼즐 조각으로 나눈 뒤 맞춘 부분을 점점 더해가는 방식으로 영상자료까지 보여준다면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의미를 조금은 가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합리적 의심의 정도' 설명 수단으로

    50개 조각으로 된 코끼리 퍼즐 사용

    6~7개 맞추면 형체 모를 조각이지만

    44~45객 맞추면 '코끼리' 의심 안해

     

    국민참여재판을 하면서 배심원들은 직업 법관에 비해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에 다소 엄격할 때가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하였다. 즉 범죄사실을 인정하여 피고인을 유죄로 처벌하려면 더 높은 증명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배심원들의 태도를 보며 혹시 나 자신이 수많은 사건 처리에 급급하여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기준을 너무 낮게 설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국민참여재판이 준 값진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유·무죄의 갈림길에 놓인 가장 중요한 원칙인 ‘합리적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 배심원들에게 하던 난해한 설명을 다시 한번 되뇌어본다. “검사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증명하여, 피고인이 무죄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는 것이 더 이상 합리적이지 못할 때에는 피고인을 유죄로 평결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유죄라고 할 때 이것이 상식에 비추어 틀림없다고 말할 수 없는 때에는 피고인에 대한 범죄사실의 인정 여부에 합리적인 의심이 남았다는 것이 되고, 검사의 증명은 범죄사실을 유죄로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므로 무죄로 평결하여야 합니다.”

     

     

    김정민 부장판사 (수원지법)



    ☞ one point 법령 해석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46조(재판장의 설명·평의·평결·토의 등)
    ① 재판장은 변론이 종결된 후 법정에서 배심원에게 공소사실의 요지와 적용법조, 피고인과 변호인 주장의 요지, 증거능력, 그 밖에 유의할 사항에 관하여 설명하여야 한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규칙
    제37조(재판장의 설명) ① 재판장이 법 제46조 제1항에 따라 배심원에게 설명할 그 밖에 유의할 사항에 관한 설명을 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내용을 포함한다.
    1. 형사소송법 제275조의2(피고인의 무죄추정), 제307조(증거재판주의), 제308조(자유심증주의)의 각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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