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 상시채용
  • 기사제보
  • 법조광장

    [국민참여재판 단상(Ⅵ)] 슬기로운 한국생활

    배심원들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 이야기 들어주는 사람으로

    김정민 부장판사 (수원지법)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57310.jpg

    피고인은 일본인 남성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70세의 고령인데 약 10년 전 일본에서 한국 여성인 피해자와 혼인하였다. 그는 살인 및 살인미수죄로 기소되었다.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돈 문제 등으로 인한 갈등 끝에 처와 협의이혼 하기로 하고 이혼 서류를 법원에 접수하였으나, 무일푼으로 쫓겨나 처로부터 버림받고 특히 처형이 처를 사주하여 이혼에 이르게 된 것으로 생각하여 앙심을 품은 나머지, 처형의 주거지에 찾아가 망치로 머리 등을 때려 피해자 처형을 그 자리에서 살해하고, 위 주거지에 온 피해자 처의 뒷머리를 망치로 내리쳐 살해하려 하였으나 피해자의 설득으로 미수에 그쳤다는 것이다. 공소사실이 인정될 경우 별다른 선처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이른바 험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수원지법 관내 △△지원에 접수됐으나 본원으로 이송되어 왔다.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은 지방법원 지원 합의부에서 재판 중인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 국민참여재판절차 회부결정을 하여 사건을 지방법원 본원 합의부로 이송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법원은 대상사건의 피고인에 대하여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지 여부에 관한 의사를 서면 등 방법으로 반드시 확인하여야 한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국적으로 보나 사건의 내용으로 보나 이 사건은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자진해서 원할 것 같지는 않은 전형적인 경우라고 생각되었다. 심지어 피고인은 공소사실을 자백하고 있어 치열한 다툼이 있는 쟁점이 있지도 않다. 그러기에 △△지원의 담당 재판부에서부터 이송된 후 우리 재판부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반복하여 피고인의 의사를 확인하였다. 피고인은 일관하여 국민참여재판을 원한다고 하였다. 돌이킬 수 없는 큰 잘못을 하였지만 피고인의 입장을 재판부는 물론 일반 국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에게 이야기하고 판단받고 싶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건까지 이르게 된 경위에 다소 억울한 점이 있어 이를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피력할 수 있다면 다른 바람이 없다고도 했다.


    처형 살해, 아내는 살해미수 혐의

    한국 여성과 혼인한 70대 일본인

    본인 의지대로 국민참여재판 회부


    일본에도 우리 국민참여재판과 유사한 재판원(裁判員) 제도가 있으니 그 영향일까 생각도 해 보았다. 2008년 일본에 해외연수를 갔을 때는 2009년 시행될 재판원 제도의 홍보가 한창이었다. 법원이나 검찰청 등 관련 기관 앞에 ‘2009년, 재판원 제도 스타트’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는 것은 물론 각종 공청회 등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나는 일본 법조인들마다 1년 먼저인 2008년부터 국민참여재판을 시행하고 있던 우리의 재판 실무나 통계 등에 관하여 묻곤 하였다. 연수법관들끼리는 일본은 5년간 관련 법률을 만들다가 2009년에 재판원 제도를 시행하고, 우리나라는 1년여에 걸쳐 법률을 제정해 일본보다 먼저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시행하였다면서, 일본의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격인 신중한 태도와 우리나라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속한 추진력을 비교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피고인의 의사가 확고하므로 배심원 9명으로 구성된 국민참여재판이 열렸다. 피해자는 증인신문을 통해 피고인에 대한 원망의 감정을 쏟아냈다. 시간이 다소 지났어도 흉기를 든 피고인과 사투를 벌이다 맨발로 도망쳐 나왔던 그날의 공포와 고통이 쉽게 잊힐 리도 없거니와 피고인 때문에 가족까지 잃은 피해자였다. 피고인에게도 발언기회가 주어졌다. 그런데 여러 장의 종이에 손글씨로 자신의 억울한 부분을 써와서 읽어 내려가던 피고인이 머지않아 이를 멈추고 모든 것이 본인의 잘못이라며 법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이야기하였으니 그것으로 족하다고 하는 것이었다. 배심원들은 징역 20년 5명, 22년 1명, 28년 2명, 30년 1명 정도로 양형의견을 냈다. 피고인이 일본인이라거나 피해자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흔들린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과연 일본인 피고인은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만족을 얻었을까. 사실은 아직도 궁금하다. 그러나 피고인에게 배심원들은 미묘한 관계를 부정하기 어려운 ‘한국’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는 고마운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재판장의 임무를 다한다는 미명 아래 공연히 한일관계를 염려하여 피고인의 의사를 되묻던 나의 짧은 생각이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었다. 남은 생의 대부분을 타국의 교도소에서 보내야 할지도 모르는 피고인의 선택이 진정 슬기로운 것이었기를 바란다.


    김정민 부장판사 (수원지법)


    ☞ one point 법령 해석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제8조(피고인 의사의 확인)
    ① 법원은 대상사건의 피고인에 대하여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지 여부에 관한 의사를 서면 등의 방법으로 반드시 확인하여야 한다.
    제10조(지방법원 지원 관할 사건의 특례) ① 제8조에 따라 피고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는 의사를 표시한 경우 지방법원 지원 합의부가 배제결정을 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국민참여재판절차 회부결정을 하여 사건을 지방법원 본원 합의부로 이송하여야 한다.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