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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

    이성식 과장 (법무연수원 법무교육과)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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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피의자는 나름 지역 사회에서 명망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피해자 부부에게 실체 없는 사업에 투자하기를 권했을 때 피해자 부부는 분명 그가 장애인단체를 운영하여 성실히 봉사하는 모습을 기억하며 그를 신뢰하였으리라. 피의자는 피해자 부부가 “당장 생활이 어려우니 투자한 돈의 일부라도 돌려 달라”고 하자 “조금만 더 참고 오히려 좀 더 투자하면 큰 수익을 볼 수 있다”고 속여 친척들에게까지 돈을 빌리게 하였다.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었으나 이 부부는 헤어날 수 없었고 피해 금액이 어느덧 10억원을 넘게 되었다. 

     

    구속 사건을 수사하며 대질하는 과정에서 피의자로부터 놀라운 말을 들었다. “저 사람들이 너무 잘 속는 바람에 내가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저 사람들 때문이다.”

     

    그의 생각의 흐름을 유추해 보았다. "저 부부가 조금이라도 의심하는 눈초리를 내게 보냈다면 내가 멈칫하지 않았을까. 내가 하는 말마다 다 믿으니 내가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사기를 친 것 아닌가. 저 부부가 피해자라 한들 저들은 자유의 몸이고 최소한 나처럼 구속되지는 않았다. 몇 년을 살아야 할지 모르고, 출소하면 ‘존경받는 봉사자’가 아니라 ‘사기꾼’이라는 낙인을 평생 짊어져야 할 내 신세가 저 부부의 신세보다 처량하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저 사람들 때문이다."

     

    그는 피해금액을 한 푼도 배상하지 않고 끝까지 피해자 부부를 원망하며 조사를 받았다.

     

    공판카드에 구형을 가중하여 적고 공소장을 작성하여 기소한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어나 씻은 후 집 욕실의 수채통에 끼어 있는 머리카락들을 걷어 내었다. 

     

    평소 내가 지저분하다는 생각에 가장 하기 싫어하는 그 일을 하며 문득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내 마음이 이 수채통의 머리카락보다 더 더럽구나.

     

    나는 당연히 나의 잘못이 녹아 있는 결과를 받아들고도 마치 다른 사람의 잘못인 것처럼 그 책임을 전가하며 비난하지 않는가. 습관처럼 나만 옳고, 나만 피해자라고 생각하며 나 스스로를 속이고 정당화하면서 나를 고칠 기회를 저버리고 있지 않은가.

     

     

    이성식 과장 (법무연수원 법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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