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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포럼

    형벌감수성과 단기 자유형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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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이재용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그룹 내에서의 재범방지를 위한 실효적인 준법감시 강화의 필요성을 언급하자 삼성이 분주히 움직였다. 납기에 맞춰 하자 없는 제품을 납품하려고 총력을 기울이는 기업다웠다. 대법관 출신을 위원장으로 모셔 위상을 높인 준법감시위원회를 설치하고 다양한 준법감시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그룹 계열사의 기업쇄신과 준법경영 강화를 다짐했다. 이렇게 재판부의 주문을 충실히 이행하면 실형선고의 이유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 것 같다. 재범방지대책을 잘 세우면 재범의 위험성이 낮아졌다고 평가되어 특별예방효과를 얻게 되고, 다른 재벌기업에게는 준법감시체제를 갖추라는 경고가 되니 일반예방효과도 달성할 수 있고 법정에서 반성과 속죄를 확인할 수 있다면 예방목적의 실형집행은 불필요해졌다고 판단할 것이다. "각종 도전에 직면한 엄중한 시기에 재벌 총수는 재벌체제의 폐해를 시정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라는 재판장의 훈계는 이를 암시하고 있다.

     

    범행 후에 비자발적으로 재판부의 요구에 맞춰 준법감시제도를 정비하고 앞으로 잘 하겠다는 다짐과 계획만으로 집행유예 사유가 될 수 있을까. 그런 약속은 뉘우침의 산물도 아니다. 재판부의 요구에 따르지 않으면 실형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읽히는 달콤한 협박이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을 것이다. 우리의 양형기준도 있는데 미국 양형기준까지 끌어들인 재판부의 이러한 기획은 양형이 아무리 법관 개인의 양심과 세계관에 맡겨져 있다고 하더라도 이례적이고 이상하다. 준법감시제도의 시행이 유리한 양형사유가 되려면 범행 이전에 준법감시제도를 갖추고 있었고 감시체계가 잘 작동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범행이 벌어졌어야 한다. 아무리 삼성이 나라경제를 책임지고 있어 삼성공화국이라고 불리더라도 집행유예는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재벌개혁과 정경유착 근절 그리고 사법정의의 실현을 위해 기업범죄를 단죄하라는 국민적 요구와 기대에 반하는 일이다.

     

    집행유예로는 형벌의 경고기능은 잘 작동하지 않는다. 법이 살아있음을 보여줘야 법신뢰가 형성되어 범죄예방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럴 때 떠오르는 묘수가 형의 일부는 집행유예, 일부는 단기 자유형을 선고하는 거다. 전부 실형은 가혹하고 집행유예의 특혜로 풀어주는 것이 부적절할 때 쓸 수 있다. 단일 자유형에 대한 일부 집행유예가 허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고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형법 해석상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하급심에서는 하나의 단일형에 대해 일부 집행유예를 허용한 적도 있다. 교도소의 좁은 공간에서 사회적 소통과 교류를 제한하고 개별적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형벌은 단기라도 재벌총수에게는 큰 고통이자 불쾌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수형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형벌의 고통정도, 즉 형벌감수성은 정치인이나 기업총수의 경우 매우 높을 것이므로 단기의 자유형으로도 범죄예방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이를 이유로 자동적으로 형량을 낮추면 계층이나 직업에 따른 양형의 불평등이 생기지만 그들에게만 집행유예의 특혜를 주는 것보다 덜 불평등하다. 단기자유형의 집행은 짧지만(short) 고통스럽고(sharp) 충격적(shock)이어서 형벌감수성이 높은 범죄자의 범죄예방에 적합한 형사제재수단이 될 수 있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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