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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과법 (Apology Act)의 미학

    김동현 수석 미국변호사 (DLA Piper)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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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처럼 함박눈이 내리던 2월의 출근길, 눈길에 미끄러져 접촉사고가 난 현장을 목격했다. 운전자들은 갑자기 얼어붙은 도로를 원망하며 서로 언성을 높였지만 그 누구도 사과는 하지 않았다. 아마 사고의 책임이 자기에게 전가될까 선뜻 먼저 사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요즘과 같이 스마트폰을 통해 모든 것이 기록되고 공유되는 사회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이 될 수 있는 사과 한마디에 더욱 궁색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법과 그에 따른 책임이 결부됐을 때 사과에 인색한 현상은 특히 미국에서 도드라진다. 미국에서는 상대방의 사과가 과실 책임의 인정(Admission)으로 간주되어 사건의 결과를 다르게 하는 ‘스모킹 건’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 변호사들은 통상적으로 의뢰인에게 사과와 같이 사건에서 불리하게 해석될 언행을 하지 않을 것을 조언한다. 실제로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서는 법률가들이 실수와 사과의 관계를 너무 법적인 측면에서 고려하며 실수가 무엇이건 법률을 위반했는지 여부에만 모든 초점을 집중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서로에게 사과하는 것을 독려하고 그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법이 있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회에서 제정한 사과법(Apology Act, S.B.C. 2006, c. 19)인데, 이 법은 사과를 하는 것이 1) 잘못이나 책임을 직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고; 2) 시효의 중지 효력을 가지게 하는 것이 아니며; 3) 보험의 적용에 영향을 주지 않고; 4) 잘못이나 책임의 결정 심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사과가 잘못이나 책임을 법원에서 판단함에 있어 증거로 효력이 없다는 점이다.


    캐나다에는 이처럼 사과만을 별도의 대상으로 입법례가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사건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법을 잘 적용하는 것이 법률가로서 제일 중요한 덕목이지만, 책임소재의 우려에 앞서 서로 위로해주고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해줄 수 있는 인간미도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김동현 수석 미국변호사/FLC (DLA Pi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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