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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출제자와 응시자

    임영철 부장판사 (대구지법 포항지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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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관은 소송사건을 심리, 판단하는 자로서 재판의 '주재자', '판단자'라고 하거나, 운동경기의 '심판'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법관의 위치, 입장에 대해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주말에 집에 있으면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큰아이, 작은아이 둘 다 문제를 읽는 둥 마는 둥하면서 답 구하는 것을 서두르고 그러다보니 틀리고 실수하는 것이 많다. 그러고서는 "문제가 어렵다", "문제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이다. 나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문제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출제자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이렇게 잔소리하다보니 문득 재판도 학생의 문제 풀이와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판에 있어서는 사건 당사자가 법관에게 문제의 해결을 요구하는 '출제자'의 위치에 있고, 법관은 그 문제에 답을 찾는 '응시자'의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법관이 당사자의 출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채 약간의 자신감과 오만, 관행적 태도로(내가 우리 아이들이 문제 푸는 자세에서 추론해본 마음가짐이다) 사건을 해결하고자 한다면 우리 집 아이들이 하는 실수를 똑 같이 하는 것이 될 것이다.

     

    훌륭한 응시자가 되기 위해서, 법관은 평소에 실력을 연마하는 것은 기본일 것이고 재판에 임하여 겸손한 자세로 출제자의 의사가 무엇이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정확히, 신중히 파악하여야 할 것이다. 즉 '이 사건(문제)의 당사자(출제자)가 법관(응시자)에게 무엇을 묻고, 무슨 답을 얻고자 하는지'를 잘 파악하고, 당사자가 제출한 주장서면과 증거를 꼼꼼히 빠뜨리지 않고 잘 봐야 할 것이다. 초임 법관시절 선배들은 "모든 답은 기록 안에 있다", "아무리 어려운 사건도 기록을 3번 정도 정독하면 답이 보인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도 판사 업무를 해오면서 사실관계 확정이 어려워 고민하던 다수의 사건에서 해당 기록을 반복해서 곱씹어 보면서 그 기록 안에서 해답을 찾았던 것 같다. 결국 당사자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 적다 보니 앞서 말한 사항들은 법관에게 요구되는 아주 평범하고 보통의 덕목을 반복한 것이 되어 버렸다.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고자 했으나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학생에게나 법관에게나 진리는 하나로 통하는 것 같다.

     

     

    임영철 부장판사 (대구지법 포항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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