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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곤란한 질문

    임영철 부장판사 (대구지법 포항지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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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1회 정도 중·고등학교에 특강을 나가고 있다. 내 입장에서는 잠시나마 법대에서 벗어나 사건과 무관한 학생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고, 학생들도 정규수업에서 늘 뵙는 선생님 대신 색다른 강사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아하는 것 같다.

     

    특강에서는 정의, 법치주의 같은 거창한 주제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고, 간단한 법률용어나 법정의 모습에 대해서 얘기하기도 한다. 학생들에게 질문할 기회를 주면 매번 나오는 질문 중에 하나가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은 무엇이었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을 받을 때마나 나는 답변에 곤란함을 느끼곤 한다.

     

    어느 해는 미리 답변을 준비해보고자 기억에 남는 재판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당사자가 되어 수조 원의 지급채무를 다투던 민사재판, 대형 선박회사 및 그 지배주주가 수천억 원 상당의 조세처분에 관하여 다투던 행정재판, 피고인이 배우자를 흉기로 잔인하게 살해한 형사재판, 회생 중인 중견 회사의 M&A가 성사되어 원만히 마무리된 법인회생사건 등 사회의 이목을 끌던 사건들을 꼽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과연 이 사건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없다. 내가 처리해 온 사건 하나하나, 그 당사자들, 당시의 고민들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러하다.

     

    법관의 재판 업무 특성상, 판결을 선고하고 나면 그 사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여할 여지는 없어지고, 그 사건은 상급심의 심판대상이 되거나 확정되어 집행의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되돌릴 수 없는 큰 흐름 속에서 선고하여 지나간 사건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고, 대신 늘 새롭게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 법관의 숙명이다. 그래서 늘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현재의 사건이 가장 중요하고 관심이 가는 사건이라는 심정으로 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이 무엇이냐?"는 학생들의 곤란한 질문에 대하여 시원한 답변을 해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 변명 또는 넋두리로 "그래도 늘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을 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말은 덧붙이고 싶다.(PS.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고 학교수업이 정상화되어 특강자리에서 학생들을 마주할 날을 기다려 본다.)

     

     

    임영철 부장판사 (대구지법 포항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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