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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재판의 한계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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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재판을 진행하면서 생각보다 많이 하게 되는 말이 "판사는 신이 아닙니다"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재판을 진행하면서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재판이 실현하여야 할 궁극적인 목적임은, 그에 대해 판사가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야 함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사건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제3자에 불과한 판사가 사건의 실체 내지 진실을 파악하는 데에는 사실적 한계가 있다.

     

    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사람들의 기억력에 관한 실험을 진행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실험대상자들에게 미리 실험 내용을 알리지 않고 다수의 사람들이 일련의 행위를 연기하는 것을 보게 한 후 당일 실험대상자들에게 그대로 진술하게 하였는데, 의외로 그 순서 및 내용을 실제와 동일하게 정확히 진술한 실험대상자는 많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사건이란 사람들이 '인식'한 것이고, 사람마다 인식의 방법 내지 정도는 다른 것이어서, 사건의 내용은 사람의 인식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서로 친구 사이인 아이 1명이 다른 아이의 어깨를 치는 장면을 본다면, 누군가는 아이 1명이 다른 아이에게 부당한 유형력을 행사하여 폭행하는 장면으로, 누군가는 아이들 사이의 장난인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들은 그 전후의 사정, 어깨를 친 강도 등을 이유로 서로 다르게 인식한 근거를 설명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 이유조차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는 것이어서, 그들이 이를 말로 설명하여 타인이 그에 수긍하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재판에 대한 심리는 고정적인 형태로 남아있어 누구든지 동일하게 인식할 가능성이 제일 높은 종이에 기재된 글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재판에서 제일 난감한 경우 중 하나가 바로 그런 글자로 이루어진 자료가 없고 관련자들의 진술만 있는 경우이다. 그런 때는 그야말로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판단하여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지만, 과연 그것이 실체적 진실에 부합한 것인지는 신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류의 사건에 있어서는 당사자들이 그 판결로서 정의가 실현되었다거나 실현되지 않았다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제3자인 타인이 하는 재판의 한계인 것으로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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