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갈수록 눈이 침침해지고 있다. 작년에 시력검사를 하러 갔을 때 다초점렌즈 안경 착용을 권유받았지만, 당시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아 거절하고 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요즘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 아닌가 싶다. 어느 날은 기록에 있는 작은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아 눈을 가까이, 다시 멀리 가져가다가 착용 중인 근시 안경을 벗었더니 신기하게도 글자가 또렷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법관의 업무 중 상당 부분은 사무실에서 기록검토 및 판결문 작성에 할애하고 있는데, 판례·연구문헌 등 법률정보가 누적되고, 그 정보에 대한 검색과 접근이 보다 수월해졌으며, 이들을 활용한 주장서면, 참고서면 등 소송자료의 생성이 간편화되어 감에 따라 각 사건별로 읽어야 할 소송자료의 분량도 과거에 비해 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형사재판을 제외한 민사·가사·행정 등 재판에서 전자소송이 정착됨에 따라 대부분의 재판기록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검토하고 있다. 거기다 요즘은 법원 동료 외에 바깥사람을 만나는 횟수를 (자의든 타의든) 줄이고 있고, 그를 대신하여 세상 돌아가는 사정은 스마트폰을 통해 접하고 있는 실정이라 재판기록을 보지 않는 시간 중 상당 시간은 조그만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노안이 오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눈이 나빠져 감에 씁쓸한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큰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생물학적 상식으로는 한쪽 감각기관의 능력이 약화되면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다른 감각기관의 능력이 발달하게 된다는데, 외부 정보를 취득하는 주요 감각기관 중 하나인 시력이 약화됨에 따라 이를 보완해 청력이 향상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이다.
다행히 재판의 모습도 과거의 서면중심의 재판관행에서 현재는 구술변론중심의 재판으로 변경·정착된 상태이니, 좋은 청력과 소송당사자의 구술변론을 잘 들으려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설령 노안이 좀 오더라도 법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사건기록 검토는 타인에게 미룰 수도, 게을리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향후 가까운 시점에 권유받았던 다초점렌즈 안경을 하나 장만해야 할 듯하다(자연이 초록을 뽐내는 계절이다. 비록 바깥 활동은 자제하더라도 창밖으로 잠시 눈을 돌려보시기를 권한다).
임영철 부장판사 (대구지법 포항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