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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포럼

    '진지한' 반성, 그리고 사과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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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성범죄가 끊이질 않는 원인으로 사법부의 솜방망이 처벌이 지탄받는다. 실제로 아동·청소년 성 착취 동영상을 제작·유포한 사건의 판결문에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과 초범이 감경 요소로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n번방 사건의 성범죄자들이 틀에 박힌 선처용 반성문이나 심금을 울리는 반성문을 인터넷에서 구매해 재판부에 보내는 일도 있다고 하니 형량 낮추기 전략이 통하는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해 준 합의라도, 반성 없는 반성문이라도 정상참작 요소로 작용하니까 그렇다. 모든 범죄유형의 양형기준에 '진지한 반성'이 감경 인자에 포함되어 있는데, 반성문이 진지한 반성의 증표로 인정 받는 것이다.

     

    우리는 전략적이고 계산된 사과를 자주 목격한다. 뉘우치고 반성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과하는 모습 보여 주기는 주로 강요된 상황에서다. 떠밀려 고개 숙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처벌 위험을 피하려고, 논란의 확산을 막아 자신이나 기업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의 언사를 발표한다. 권력형 성범죄자의 사과도 마찬가지다. 반성하고 뉘우쳤는지는 개인의 주관적 내심에 속하는 것이므로 외부에서 알기 어렵지만, 범죄의 고의를 객관적 사정으로 판단하듯이 반성의 태도나 사과문의 내용 등을 보면 진정성을 추정할 수 있다. '상처받은 분이 있다면'이라는 표현이나, '실수였다'라는 등의 변명을 곁들이거나, 은근히 '남 탓'으로 돌린다면 대개 반성 없는 기획된 사과다. 

     

    반성문을 우스갯소리로 글로벌이라고 한다. 글로써 벌을 대신하거나 글로써 벌을 받는다는 의미다. 이처럼 처벌을 면하거나 감형을 보장하는 반성문은 진정성이 필수다. 그래서 법관은 선처용 반성문과 탄원서, 피해자와의 형식적 합의에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진정한 반성과 합의라는 믿음이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라면 모르겠으나, 반성문 한 장 차이로 형량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반성하고 뉘우친다면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후회의 표정을 지으며 흘리는 눈물,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는 다짐, 착하게 살겠다는 맹세는 말과 글로써는 누구나 얼마든지 연출할 수 있다. 감경 양형 인자인 진지한 반성은 범죄 후의 태도다. 말과 글로써 한 반성이 아니라,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고 사과문을 발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복구를 위한 진지한 노력,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태도와 피해자 의사를 존중한 합의, 피해자와의 화해로 반성과 사과의 진정성을 나타내 보여야 한다.

     

    앞으로는 무노조 경영을 안 하겠다, 경영권 불법 승계를 안 하겠다는 다짐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영권 승계의 '불법'을 지적했는데 자식에게 절대 물려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걸 보면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다. 글로벌 기업에 맞지 않는 경영 행태와 불법행위를 진정으로 후회하고 반성한다면 대국민 사과의 이벤트가 아니라 노조 파괴와 탄압의 피해자인 노동자와 해고노동자, 경영권 불법 승계로 손해 입은 소액주주 등에게 용서를 빌고 사과해야 한다. 사과의 대상을 잘못짚었다. n번방 사건의 피해자도 재판부가 아니다. 반성문을 내밀어야 할 곳은 법정이 아니라 성범죄 피해자다. 마찬가지로 성범죄 정치인도 시민이 아니라 미투 여성에게 머리 숙이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고 화해하기 위한 반성과 사과가 격을 갖추어야 흐트러진 법질서와 평화가 복원되고 흔들린 정의가 회복될 수 있다.

     

     

    하태훈 교수 (고려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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