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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소회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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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여년전 첫 근무를 발령받으면서 근무지와 가까운 곳으로 월세방을 구했더랬다. 계약서를 작성하는 자리에서 첫 월세를 현금으로 교부한 후 집주인에게 영수증을 요구했다. 나이가 지긋한 집주인은 웃으면서 뭘 이런 거 가지고 그런 것까지 쓰느냐며 나의 요청을 흘려버리려 했다. 재차 요구하자 자기는 그런 사람 아니라며 불쾌한 기색마저 내비쳤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상황이 껄끄러웠던데다가 후에 그다지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확실시되지도 않는 일에 더 이상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아 영수증 받는 것을 포기했다.

     

    십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일이 종종 생각나는 것은 기록에서 그러한 사례들이 의외로 비일비재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처분문서나 금융자료 등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사건에서 "좋은 게 좋은 거다"라거나 "서로 믿고" 일을 진행했는데 후에 상대방이 다른 말을 한다는 것이다. 당사자의 경험 부족이나 편의적인 업무 처리 방식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지만 거래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미리 발생할 분쟁을 예상하여 이를 명확하게 해두거나 자료를 남기는 것이 서로의 신뢰성에 대한 의심을 전제로 하는 '실례'를 범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경우에서 비롯된 경우도 상당수인 듯하다. 그리 생활반경이 넓지 않던 과거에 인적유대관계 위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래에서는 신뢰성 의심은 곧 인격 폄하인 것처럼 여겨져 왔고, 그와 같은 거래 행태가 짧은 시간에 급격하게 이루어진 근현대사회로의 변혁을 미처 따라잡지 못한 결과인 것이 아닐까. 그로 인하여 실제 거래에서는 확실한 증빙을 요구하거나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고, 소위 갑을 관계에 있을 때에는 더욱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사례가 실제로 소송으로 비화되었을 경우의 곤란함은 능히 예상할 수 있다. 누군가는 명확한 증빙이 갖추어지지 아니한 거래의 위험에 관한 책임을 부담하여야 하지만, 과연 그 누군가가 그와 같은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과연 마땅한가 하는 당위성에 관한 의문은 여전히 남게 된다.

     

     

    노연주 판사 (서울북부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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