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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포럼

    No Country for Old Men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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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CCC의 수사판사는 수만 명의 강제노동과 사망에 관한 혐의를 받는 크메르루즈 지도자 임챔(Im Chaem)에 대하여 불기소 결정을 내렸고, 항소심에서 필자는 기소 의견을 밝혔으나 위 결정은 정족수 미달로 번복되지 아니하였다. ECCC는 크메르루즈의 '가장 중대한 범죄자들'에 대해서만 인적 관할이 있는데, 임챔이 설령 수만 명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하더라도 그의 범죄는 '상대적으로' 중하지 않다는 원 판단이 유지되었다. 

     

    이후 임챔은 몇 차례 언론 인터뷰를 하였다. 그는 오랜 기간 믿어 온 불교를 떠나 기독교에 귀의하였다고 하면서 집 앞에 커다란 십자가를 세웠다. 그는 개종을 통하여 불교에서 말하는 악의 윤회에서 벗어나 죄의 사함과 구원을 얻었고, 그동안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도 모두 용서하였다고 한다. 이로써 필자는 영화 '밀양'의 이야기를 캄보디아 판으로 실시간 재현하고 있는 그로부터 뜻밖의 용서까지 받게 되었다.

     

    반면 캄보디아 정부가 '국가적 화합'을 이유로 크메르루즈 처벌에 소극적인 상황에서 위와 같은 결정은 임챔에게 사실상의 면죄부를 주는 것이었기에 많은 피해자들은 큰 실망을 나타내었다. 일부는 이러한 결정으로 더 큰 상처를 입었다면서 ECCC에 그동안 투입한 막대한 예산을 다른 데 쓰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임챔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 700여명이 당사자(Civil Party)로 직접 수사절차에 참여하였고, 그들을 대리하는 변호사 또한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다. 불기소 결정으로 이들은 임챔을 법정에서 대면할 권리를 잃게 되었다. 

     

    이처럼 피고인과 피해자 양쪽으로부터 강한 비난을 받는 내용의 재판을 하는 것은 어떤 판사도 원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사법절차는 범죄 피해자의 권리보호를 주 목적으로 하는 제도는 아니라는 점에 한계가 있다. 특히 국제규범에서 말하는 피해의 회복(reparation)에 관해서는 일부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금전배상 외에도 책임 인정(recognition) 등 필요충족 조치(satisfaction), 재활(rehabilitation), 재발방지(guarantees) 등 여러 다른 수단이 피해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 

     

    그럼에도 전체 피해자 보호 체계에서 사법제도가 담당하는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UN 피해자 보호 기본원칙에서는 피해자를 공감(compassion)과 존중(respect for their dignity)으로 대하여야 하고, 피해자에게 '사법절차 접근 및 신속한 구제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강점기 일본의 범죄, 한국전쟁 무렵의 양민 학살, 5·18 광주민주화운동, 형제복지원 사건, 세월호 사건 등 다수 피해자와 사회적 트라우마를 남긴 사건에서 사법제도가 '진상규명' 또는 '책임자 처벌'에 집중하는 외에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과 존중, 나아가 그들의 자유로운 정보 및 절차 접근에 대한 배려를 하였는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첫단추가 제대로 끼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수단에 의해 그들의 상처가 치유될 가능성은 크지 않았을지 모른다. 유엔은 2000년 이래 각 국에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 실시에 대한 권고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 피해자들의 상처 치유와 피해 회복을 위해서는 그 출발점이 되는 사법제도를 좀 더 피해자 중심으로 재편하고 운용하는 지속적 노력이 필요하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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