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galinsight
  • Legaledu
  • 법률신문 오피니언

    서초포럼

    죽은 피고인에게도 무죄선고를

    이창현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입력 :
    글자크기 : 확대 최소
  • 인쇄
  • 메일보내기
  • 기사스크랩
  • 스크랩 보기
  • 163191.jpg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한 직후에 갑자기 사망한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런데 사망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경찰에서 '공소권없음' 처분을 한다는 섣부른 소식까지 이어졌다. 사망으로 인해 피의자를 수사할 수가 없으니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더 이상의 논의가 불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비겁하게 사망으로 책임을 모면하고 피해자에게 또 다른 아픔을 주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의하면 박 전 시장이 고소를 당한 범죄에 대해서는 거의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으로 보이긴 하지만 정말 죽을 만큼 억울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

     

    무고죄를 변론하였던 사건이 있었다. 피고인은 아내와 금은방을 운영하던 중에 사기를 당하였다고 고소하여 검찰에서 피해자로 조사를 받던 중에 무고로 입건되고 졸지에 긴급체포까지 되었다. 급히 변호인으로 선임되어 검사를 만나보니 친구사업에 투자한 것으로 보이는데도 계속 속아서 빌려주었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체포하였다는 반응이었다. 영장실질심사를 준비하는 중에 검사가 느닷없이 피고인을 석방하여 구속은 면하게 되었지만 난생처음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피고인은 이미 극도로 위축되어 있었고, 아내에게는 수억원을 사기당하고 도대체 무슨 꼴이냐는 핀잔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피고인은 계속 불안해하였지만 변호인은 무죄를 확신하였고 재판도 잘 진행되었다. 선고일을 앞두고 피고인은 매일 변호인에게 전화를 하거나 직접 방문하여 초조해 하면서 '무고는 무죄가 아니면 실형'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피해금을 모두 포기하고 친구와 합의라도 하고 싶다고 하였다. 변호인은 무죄선고가 될 것이고 최악의 경우라도 실형은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선고 3일 전에 피고인이 아닌 그 아내의 울부짖는 전화를 받았다. 남편이 자살하였다며 결백을 꼭 밝혀서 한을 풀어달라고 애원하였다. 그러나 몇줄짜리 공소기각결정문을 받아주는 것이 전부였다. 

     

    지금까지 수사나 재판을 받는 중에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보았고, 그 죽음으로 인해 실체판단보다 형식판단을 우선한다는 원칙에 따라 수사 중에는 공소권없음 처분을, 재판 중에는 공소기각결정으로 손쉽게 털고 실체진실은 그냥 묻혀버리고 말았다. 피의자나 피고인의 잘못이 확인되면 어쩔 수 없지만 정말 최선을 다한 수사나 재판을 통해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죄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혐의없음이나 무죄선고를 해주는 것이 국가가 죽은 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닐까. 판례에서도 신호를 위반하여 교통사고를 냈다며 기소된 피고인에게 신호위반이 인정되지 않으면 종합보험에 가입되었지만 공소기각이 아닌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 판결에 대해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위법하지는 않다는 판단이 있었고, 재심에서는 피고인이 사망하여도 무죄선고가 가능하다. 

     

    형식재판을 우선한다는 원칙이 그렇게 중요한가. 죽기까지 한 피고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면 좋겠다.

     

     

    이창현 교수 (한국외대 로스쿨)

    최근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