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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

    양창수 전 대법관(한양대 석좌교수)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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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고전을 읽다 보면 때로는 놀랍게도 '근대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언명에 부딪히는 일도 있다.

     

    예를 들어, 유교에서 가장 중시되는 사서삼경 중의 하나인 '서경'의 '우서(虞書) 대우모(大禹謨)'에는 다음의 구절이 있다. "고요가 말하였다. '…죄의 판결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가능한 한 가볍게 판결하고, 공적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어도 가능한 한 무겁게 평가한다.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제대로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놓치는 편을 택한다'(皐陶曰: '…刑故無小, 罪疑惟輕, 功疑惟重, 與其殺不辜, 寧失不輕')."

     

    위와 같은 '서경'의 말은 그 후 많은 세월이 지나서 예를 들어 청나라 초기인 1699년에 출간된 황육홍(黃六鴻)의 '복혜전서(福惠全書)'에도 그대로 조술되어 있다. "지방관은 전곡(錢穀)[즉 조세]과 형명(刑名)[즉 사법(司法)]을 중시하지만, 형명은 전곡보다 더 중요하다. 무릇 전곡의 문제는…해로움이 단지 백성이 세금을 더 많이 내는 데 그친다. 하지만 형명은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그 해로움은 남의 생명을 빼앗는 데 이를 수도 있다. …옛사람들이 남긴 뜻은 진실로 깊으니, …그렇게 되려면 결국은 '차라리 무거운 죄에 가벼운 형벌로 처벌하지, 가벼운 죄에 무거운 형벌로 처벌하지 말라'거나,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제대로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놓치는 편을 택하라'는 뜻으로 돌아가야 한다(總歸于 '寧出毋入'與'寧出不經' 之意)."{이상의 번역은 김형종 옮김, 복혜전서1(2020), 54면 및 61면에 좇았다}.

     

    '복혜전서'는 당시의 지방관리 중에서 황제가 임명하면서도 유일하게 백성을 직접 대면하며 다스리는 지현(知縣)·지주(知州), 즉 주나 현의 지방장관을 상대로 하여 '좋은 목민관을 위한' 지침서로 저술된 유명한 책이다. 그 점에서 정약용의 '목민심서'에도 대응하지만 이보다는 훨씬 실무적·행정적인데, 그 후 내내 19세기 후반에 이르도록 지방관리 사이에서 두루 읽혔다고 한다.

     

    대학교 3학년 때 처음 형사소송법을 배웠을 때 교과서 앞머리에서 무겁게 강조되는 법격언이 바로 "열 사람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사람의 무고한 죄인을 벌하지 말라", 그래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온전히 우리가 근자에 들여온 서양법의 산물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앞서 본 동양 고전의 말들은 위 법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이에 일어난 법이념의 근본적인 전환, 즉 독립된 개인의 자유를 앞세우는 법적 패러다임의 대전환 아래서도 과연 우리의 '좋은 옛 법(gutes altes Recht)'을 내세워도 좋을까?

     

     

    양창수 전 대법관(한양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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