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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포럼

    '명예훼손 법체계' 다시 생각해 보아야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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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소·고발사건이 2019년 한 해에만 77만여 건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일본과 비교하여 과거 30배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50배에 이른다고 하니, '고소·고발 공화국'이라는 말이 무색하지는 않다. 게다가 2019년의 경우 구약식을 포함하여 기소된 사건은 77만여 건 중 14만 여건 정도라고 하니, 효율성과 수익성(?) 측면에서는 고소·고발은 접수 자체를 거부해야 할 사건이 아닌가 한다. 

     

    고소·고발사건이 많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 중 하나는 민사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채권채무관계의 해결을 위해서라고 한다. 채권의 만족을 얻기 위하여 필요한 증거자료를 확보하거나 채무자의 소재를 찾는 데 국가 수사기관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때로는 채무자에 대한 훌륭한 심리적 압박수단이 되기도 하는데, 일반 서민들에게는 민사소송보다는 형사고소가 더욱 효율적인 수단일 수 있다. 최근 언론사와 기자, 유튜브 운영자 등을 상대로 하는 허위보도를 이유로 한 명예훼손 고소·고발 언론보도를 자주 접하게 된다. 이와 같은 고소·고발은 민사적 문제 해결이 아니라 의혹 제기에 대한 적극적 방어 차원에서 제기된다는 점에서 고소·고발의 또 다른 양태라 할 수 있다.

     

    사회지도층이나 공적 인물이라고 하여 악의적인 허위의 보도나 주장에 대하여 이를 감내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악의적이고 근거없는 무분별한 비난이 아니라면 사회지도층이나 공적 인물에 속하는 사람이 그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와 관련하여 의혹을 제기한 언론을 상대로 고소·고발을 제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경우 명예훼손을 이유로 한 고소·고발은 국가형벌권을 동원하여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나아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권력층에 속하는 사람이 제기한 고소·고발이라면 더욱 그러할 수 밖에 없다. 

     

    현재 헌법재판소에서는 사실적시를 이유로 한 명예훼손죄의 위헌여부에 대하여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기회에 국가가 명예훼손에 대하여 직접 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와 맞는 것인지, 민사적 제재를 원칙으로 하고 형벌은 예외적으로 개입하여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명예훼손 법체계에 대한 근본적 고찰을 해 보았으면 한다. 명예훼손 고소사건에 있어 충돌하는 기본권에 대한 깊은 고민없이 형식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말을 한다는 것은 인간 본성의 일이다. 말을 할 자유의 영역에 국가형벌권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게 될 수 있다. 그럴 경우 국민은 대나무 숲을 찾아갈 수 밖에 없다. 그 때에는 국가가 대나무를 베어내고 산수유를 심을 것인가? 법적 규제만으로 말의 영역을 규율할 수는 없다. 명예훼손을 둘러싼 민사적·형사적 규율 체계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필요한 때에 정비를 하지 않으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愚)를 범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상철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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