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으로서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판례가 중요하다는 점은 굳이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말이다. 어떤 문제 사안에서 법원의 확립된 판례가 있다면 (내가 원하는 결론이든 아니든) 사실상 정답이 나온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안타깝게도 판례는 물론이거니와 특별한 학설 논의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일반적으로 판례나 학설 정도가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리서치 자료다 보니, 판례나 학설이 없는 이슈는 검토의 첫 발을 내딛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사견으로만 검토를 진행하자니 그것은 더욱 안될 일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직감할 수 있고, 사실 학설이 있더라도 판례가 없다면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와중에 업무 처리 기한까지 다가오면 마음만 급해져서 더욱 시야가 좁아질 때가 있는데, 이럴 때 간과하기 쉬운 것이 바로 선행사례다.
선행사례란 이미 발생된 어떠한 사실관계 그 자체나 이미 이루어진 법률검토라고 정의할 수 있는데, 어느 것을 의미하든 선행사례의 존재는 문제가 되는 사안에서 내가 내린 결론이 이론뿐인 논증이 아니라 현실이나 실무에 부합한다는 근거가 되거나, 이와 반대로 내 결론이 비현실적인 논증이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판례나 학설이 없다고 하더라도 이슈가 되는 사안을 처리한 선행사례가 있다면 판례를 발견한 것처럼 자못 든든해지고, 선행사례가 다수 축적된 상태라면 마음속에서는 관습법이 형성되기에 이른다. 판례라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선행사례의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법원의 판단이 미치지 않는 영역에서는 선행사례가 마치 판례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타당해 보이는 선행사례라 하더라도 이를 종국적인 논리의 근거로 삼는 것은 조심스럽다. 기존에는 타당했던 견해나 사실이라도 여전히 타당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고, 기존의 선행사례들이 사실은 부적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행사례를 신뢰하는 것은 경험칙상 상당히 합리적이지만, 실은 논리 오류(Appeal to tradition) 중 하나에 해당한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장제환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