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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버클리 공공정책대학원 이야기] <2> 반론에 대처하는 자세

    민창욱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지평)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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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다수의 독자는 내 글에 관심도, 내 글을 읽을 시간도 없어 - 요약문을 잘 쓰는 것이 중요

    상대방의 유력한 반론을 내 글에 포함하되, 그 반론에 ‘재반박’하지 않고 ‘양보’할 줄도 알아야
    반론을 다루지 않는 글로는 중립적인 독자를 설득할 수 없어


    공공정책대학원에는 말하기와 글쓰기 수업이 꽤 많다. 정책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말과 글로 상대를 설득하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경제학 용어를 쓰지 말고 경제학 리포트를 작성하라는 과제가 나왔고, 프레젠테이션 장면을 녹화하여 말하기 습관을 교정해 주기도 했다. 영어가 짧은 필자로서는 매우 곤혹스러운 과정이었다.


    ‘30초-3분-30분의 법칙’ - 독자가 내 글의 본문을 읽게 만들어라

    오늘은 글쓰기 수업에서 배웠던 두 가지 주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 번째 주제는 ‘30초-3분-30분의 법칙’이다. 글쓴이는 대체로 본인이 쓴 글에 몰입되어 있기 때문에 남들도 자기 글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두 가지가 없다. 내 글을 읽을 시간이 없고, 내 글에 관심이 없다. 우리의 글쓰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어떻게 하면 바쁜 독자들이 내 글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 것인가? 이를 위해 여러 기법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10페이지 이상의 글을 쓸 때에는 요약문(Executive Summary)을 잘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책결정자가 내 보고서를 읽는데 쓸 수 있는 시간은 딱 30초이다. 우리는 정책결정자가 30초 안에 요약문을 읽고 그 다음 페이지를 넘겨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정책결정자가 요약문에 흥미를 느꼈다면, 그 후 3분 정도는 내 보고서를 쭉 훑어보게 될 것이다. 그 3분 동안 정책결정자가 보고서의 전문을 읽어보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소목차(header)를 잘 뽑고, 각 문단의 첫 문장을 두괄식으로 짜임새 있게 작성해야 한다. 그러면 정책결정자는 30분을 할애하여 내 보고서를 꼼꼼히 읽어보게 될 것이다.

    요약문을 작성할 때 가장 중요한 사항은 본문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오지 않는 것이다. 요약문과 본문은 문장의 밀도가 다르므로, 본문의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면 요약문을 압축적이고 간결하게 작성할 수 없다. 교수님은 요약문에 들어갈 모든 단어를 하나 하나 신중하게 선택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학생들이 작성한 정책보고서를 평가할 때 전체 배점 100점 중 10점을 요약문에 배정하였다. 이 10점은 정책보고서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본문을 얼마나 잘 요약했는지만을 보고 매기는 점수이다. 실제로 OECD 등 국제기구에서 발간한 보고서들의 요약문은 매우 간결하고 명확하다. 본문의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독자가 본문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반론에 대처하는 자세 1. 유력한 반론을 반드시 글에 포함하라

    다음 주제는 글에서 상대방의 반론에 대처하는 방법이다. 교수님은 상대방의 반론을 다룰 때에는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다. 첫째 원칙은 유력한 반론을 반드시 내 글에 포함하라는 것이고, 둘째 원칙은 그 반론을 재반박(refutation)하거나 아니면 그에 양보(concession)하라는 것이었다.

    재반박은 그렇다 치고, 양보는 무슨 말일까. 교수님은 양보란 재반박하지 않고 상대방의 논거를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니, 재반박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 유력한 반론을 왜 굳이 내 글에 담아야 하는가? 상대방의 반론을 꼭 글에 써 줘야 하는지 묻자, 교수님은 이렇게 답했다.

    “유력한 반론을 글에 포함하지 않으면 독자는 당신이 쟁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당신이 설득할 대상은 사안에 중립적이거나 그에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요? 그럼 반론도 당신의 글에서 충실히 다뤄 주는 것이 좋습니다.”


    반론에 대처하는 자세 2. 반론에 양보(concession)할 줄도 알아라

    그날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양보’란 개념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소송변호사로서, 나의 주장을 서면에 완결적으로 담아야 설득력이 높아 진다고 여겨 왔다. 상대방 반론의 일부를 서면에 담을 수는 있겠으나, 이는 재반박을 통해 나의 주장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위한 일보 후퇴였을 뿐이다.

    다음 수업 시간에 교수님을 찾아가 다시 물었다. 유력한 반론에 대하여 재반박 없이 양보하면, 오히려 내 글의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나요? 그러자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독자는 당신이 양보한 그 논거 하나만 보고 글의 설득력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여러 논거들을 종합하여 결론의 타당성을 판단하겠죠. 유력한 반론에 대해 무리하게 재반박하는 것보다, 그에 한발 물러섰을 때 독자들은 당신이 좀 더 균형감을 갖추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만약 당신이 보기에도 반론의 논거들이 전체적으로 더욱 설득력이 있다면, 그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글의 결론을 바꾸는 것입니다.”


    중립적인 독자를 설득하기 위한 글쓰기

    물론 학자나 정책분석가의 글쓰기와 법률가의 글쓰기는 다를 수 있다. 특히 소송변호사가 결론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의뢰인이 있는 변호사든, 자기 진영이 있는 지식인이든, 유력한 반론을 글에서 정직하게 다루어 주는 자세는 필요하지 않을까. 자기 편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3자를 설득하고 논의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글을 쓴다면 말이다. 과거에 쓴 나의 서면을 보다가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끼면서, 주제 넘게 몇 마디를 적어 보았다.


    민창욱 변호사 (법무법인(유한)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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