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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포럼

    뜻하지 않은 불리한 진술

    정소민 교수 (한양대 로스쿨)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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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면 상대방은 원고가 교통사고 당시 경찰에게 괜찮다며 앰뷸런스를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 사실에 근거해서 주장을 펼칠 수도 있다. 상대방 변호사가 "확실히 사고 당시에는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부상이 심하지 않았던 것 아닌가요?"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지는 이것이 문화적 오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항상 상황을 과소평가하고 통증이나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 상황에서 조차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한국식이다…(중략)…그러나 변호사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만약 사고 당시 부상이 심했다면 왜 괜찮다고 얘기했나요? 사고 당시 거짓 진술을 한 것인가요 아니면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요?" 변호사는 다시 한 번 압박한다.(수키 킴, '통역사' 중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 수지는 뉴욕 법원에서 법정통역사로 일하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영어를 잘 못하는 원고가 교통사고 당시 출동한 경찰에게 괜찮다고 얘기한 것이 화근이다. 외국에서 물건을 사다가 거스름돈이 틀렸을 때 다시 점원에게 가서 따지지 않고 그냥 발길을 돌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또 외국 병원에서 자신의 증상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해서 아프다고만 말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소설 속 원고의 상황에 더 공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한인 사회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도 있다. 손자가 놀이터에서 놀다가 실족사 하였는데 당시 손자를 돌보던 할머니가 놀이터에 털썩 주저앉아 땅을 치며 "내가 죽였어…내가 죽였어…”하며 통곡을 한 것이다. 출동한 미국 경찰은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면서 울고 있는지 물었다. 한국 사람이라면 할머니의 "내가 죽였어"라는 울부짖음은 손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자신의 부주의함을 책망하는 것으로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적 배경 없이 수사 절차나 법정에서 할머니의 진술이 그대로 영어로 통역되면 의도하지 않게 살인 자백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베트남 여성이 3세 아들을 폭행하여 장기가 파열되었다는 기사가 인터넷 포털사이트 메인 화면을 오랫동안 장식하고 있다. 20대 후반 검사시보로 서울지검에 출근한 첫 달 지도 검사님과 함께 토요일 오후 사체 부검을 의연히 참관했던 배포(?)는 사라지고 잔혹한 폭행·상해의 자세한 묘사가 예상되는 기사는 언제부터인가 제목만 읽고 넘겨 버린다. 사실 제목만으로도 3세 아이가 받았을 고통이 저릿하게 전달되어 오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외국인 범죄가 늘고 있다. 특히 아동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향한 범죄는 단호하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믿는다. 다만 한국 법원에서 형사 재판을 받게 될 저 베트남 여성이 수사 과정이나 법정에서 본인의 진술이 뜻하지 않게 왜곡되지 않고 정확히 재판부에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도 한 편에 생긴다. 오래 전에 읽은 통역사라는 소설이 남긴 여운이다.

     

     

    정소민 교수 (한양대 로스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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