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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설

    민사소송법상 증거 규정 연구 조속히 착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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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사소송에서 원고를 대리해 본 실무변호사라면 누구나 공감할 터인데, 한국 민사소송법상 증거법 부분에는 개선할 점이 많다. 한국의 증거법은 당사자의 증거수집과 법원의 증거조사를 잘 구별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전자에 대한 규정은 없고, 후자만 존재한다. 한국 민사소송법의 증거규정들이 상정하고 있는 절차란, 당사자가 이미 확보하고 있던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면 법원이 이를 심사한다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증거부족 상태의 원고가 민사소송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실현하기는 무척 어렵다. 

     

    이는 소제기 후 공판전 절차의 핵심을 이른바 디스커버리(discovery)라는 증거수집 절차가 차지하는 미국과 뚜렷이 대비된다. 이처럼 상대방이 소지한 증거도 민사소송절차에서 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최근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를 이유로 하는 거액의 소를 제기하면서, 즉 한국 기업끼리 한국에서 벌어진 일에 관한 분쟁을 해결해 달라고 하면서 미국 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 민사소송법의 모법인 독일의 민사소송절차는, 상대적으로 한국과 더 유사하기는 하지만, 여기에서도 한국보다는 사전적 증거수집이 더 많이 행해진다. 즉 독일 민사소송법에서는 이른바 독립증거절차(selbstandiges Beweisverfahren)가 마련되어 있어서 소제기 전에도 증거의 수집 및 개시(開示)를 할 수 있으며, 실무상으로도 건축관련 영업상 권리분쟁, 임대차 관련 분쟁, 의료분쟁 등 여러 법률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도 증거보전절차가 있기는 하지만, 이는 보전의 필요성을 요건으로 하고 있으며 실무상 잘 활용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민사소송에서 증거수집의 방법이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증거가 피고 측에 편재하는 경우에는 억울한 원고가 구제를 받지 못하는 일이 종종 생기고, 또한 이를 해결해 보려고 순수 민사사건에서도 형사고소가 빈발하는 현상이 생긴다. 이러한 상황인식 하에서, 미국의 디스커버리를 한국에 도입하자는 주장도 종종 있지만, 디스커버리 제도는 당사자와 법원의 역할분담, 소제기와 법정기일 간의 먼 간격, 법정기일의 집중 진행, 엄격한 증거능력제도 등 미국의 기타 소송절차법과 밀접하게 결합된 제도여서, 이를 그대로 한국에 도입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즉 증거수집절차를 개선하려 하더라도, 한국의 민사소송절차는 한국의 여러 실체법·절차법 제도와의 상호관련 속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현재의 불합리를 해결하기 위한 면밀한 연구에 착수해야 하는데, 이런 연구의 작업량은 클 수밖에 없으므로 장기간의 계획 하에 추진되어야 한다. 그 전이라도 민사소송절차상 정의가 더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현행법상의 문서제출명령을 어떻게 활성화할 것인지, 제출의무자의 불제출에 대한 "문서기재에 대한 상대방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조문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사례별·유형별로 확정하는 작업이라도 곧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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