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는 악당해, 나는 슈퍼영웅 할게."
이제 말을 제법 하게 된 막내가 어디에서인가 '슈퍼영웅'과 '악당'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배운 모양이다. 악당은 막내의 주문대로 공룡 흉내를 낸다. 피해자인 곰돌이 인형이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면, 그 순간 슈퍼영웅이 짠하고 등장해 악당을 무찌른 뒤 트램폴린 감옥에 가둔다. 정말 사랑스러운 슈퍼영웅이다.
아이들은 가끔 왜 엄마가 감옥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인지 묻는다. 하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은 선생님에 비유할 수 있는 판사나 경찰에 비유할 수 있는 검사와 달리 설명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엄마는 왜 곰돌이 인형을 구해주는 슈퍼영웅이 되지 않고 악당을 도와주는지 묻는 아이의 말에 어떻게 대답할지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그 사람이 자기는 악당 아니라고 해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고, 잘못한 사람도 잘못한 만큼만 벌을 받아야 하니,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슈퍼영웅이 실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는 잘못한 사람을 도와준다는 개념 자체가 혼란스러운 듯싶다.
변호인으로 형사사건을 진행하다보면 구속을 앞두거나 구속된 피의자·피고인들, 그 가족들로부터 여러 간곡한 부탁을 듣게 된다.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가 기각되어 풀려 난 사람들은 변호사에게 전화를 한다. 펑펑 울면서 전화하는 경우도 많다. 뿌듯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잘잘못을 떠나 한 사람의 인생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에 인간적인 연민이 든다.
사람이 감옥에 갇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그래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고, 사회에서의 모든 활동이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 큰 형벌이다. 형사소송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건조하게 설명하지만, 거기에 달린 한 사람의 인생을 생각하면 한없이 무겁다. 구속을 앞둔 피의자를 볼 때면 혹시라도 기록에서 놓친 것이 없진 않을까 한결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이럴 때면 변호사는 그 어떤 악당을 변호하는 사람일지라도 공익을 위한 존재가 맞다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
김정현 변호사 (창경 공동법률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