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임명되신 모 대법관님의 사법연수원 시절 검찰교수와의 에피소드로 인해 검사 임관 신청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면접을 준비하면서 비로소 검사는 실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알고자 책을 찾아보았고 그때 찾아 읽었던 책이 '안검사의 일기',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안검사의 일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된 글로, '정의롭고 용기있는 검사'로서의 자세를 정립하는데 하나의 기준을 제공하는데 유용하였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 기준은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책에서 깊은 인상을 준 글귀는 '검찰은 사회의 이목을 끄는 큰 사건만을 처리하는 곳은 아니다. 아마도 검찰의 가장 귀중한 업무는 일상적인 여러 가지 범죄의 사건을 그야말로 정의와 형평에 맞게 국민의 편에 서서 처리하는 것이다'라는 서문에 기재된 부분이었다. 검찰의 가장 귀중한 업무가 '거악척결'이나 '파사현정'과 같은 거시적인 무엇이 아니라 사소한 것이라고 하니 의아했다.
생각해보니 검사 시보 기간 동안 배당받았던 사건, 지도검사가 처리하던 대부분의 사건 역시 흔히 '사소한 사건'으로 치부되는 일상적인 여러 범죄들이었다. 나도 검사로 임관된다면 주로 일상적인 범죄 사건을 대부분 맡을 것으로 생각하니 자못 귀중하게 여겨야 되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귀중하게 여긴다는 것일까. 이런 고민에 답하듯 '죄에 대하여 불같이 화를 내면서도 저지른 인간에 대하여는 탄식할 수 있는 검사, 온화한 얼굴을 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눈빛을 가진 검사. 그러한 균형있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검사의 길이다', '범죄에는 추상열일의 자세를, 그러나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말 것'이라는 문구들이 나타났다.
검사가 되어 십수년 간 위 문구를 실천하고자 불같이 화를 내보기도 하고 온화한 얼굴도 지어 보이기도 하였지만 애정을 갖고 탄식하며 가슴아파했는지, 심중을 꿰뚫어 보았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앞으로는 가해자로도, 피해자로도, 참고인으로도 수사기관에 오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으로 나름의 애정을 표현하였다고 자족해볼 뿐이다.
한진희 부장검사 (고양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