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첫 문장을 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목차를 잡는 일인 것 같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명확하거나, 리서치를 깊이 있게 해 글감이 풍부하더라도 글의 흐름을 어떻게 끌고 가 어떤 끝맺음을 할 것인지 정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다. 그리고 단순히 목차를 잡는 것에서 나아가 좋은 목차를 잡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어려운 것은 목차를 잡지 않고 좋은 글을 쓰는 일인 것 같다. 무엇에 방점을 두어야 할지 집중하지 않으면 쓸 데 없는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공들인 글과 시간을 허무하게 버리기 일쑤이고 글을 완성하더라도 흐름이 매끄럽지 않아 2중 3중의 노력이 요구될 때가 많다. 이와 달리 목차를 미리 준비한다면 글의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목차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검토의 오류를 미리 발견할 때가 있어 뒤늦은 후회를 줄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무언가 새로운 시작을 할 때 마음가짐을 달리 하거나 어떤 계획을 세울 때가 있는데, 이러한 마음이나 계획을 초심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컨대 변호사로서 첫 발을 내딛거나 변호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이러한 초심을 갖게 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굳건했던 초심이 차츰 잊혀 갈 즈음,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아 나를 다잡고 싶을 때나, 혹은 정신없는 생활 속에 내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가 의심이 들 때면 초심을 떠올릴 때가 있다. 하지만 초심을 떠올렸다고 해서 언제나 힘을 얻는 것은 아니고, 때로는 오히려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초심을 잃었다는 한숨,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고 있다는 실망,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조차 알기 어려운 막막함이 마음을 어둡게 물들이기도 한다. 우리네 삶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종종 객관적으로 마주하는 내 삶의 모습은 개운하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초심을 잊거나 없애버리는 것은 마치 애써 세운 목차를 지우고 목차 없이 글을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목차대로 글이 써지지 않을 때 목차가 잘못된 것인지 다시 돌아보고 목차와 글을 수정하는 것은 적지 않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고통스러운 과정 후에 내 글이 더욱 좋아질 것을 믿는다면, 목차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작년도 여러모로 쉽지 않은 한 해였지만, 그래도 초심을 다잡아 한 걸음 더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장제환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