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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포럼

    Silver Linings Playbook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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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바이러스 팬더믹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크리스마스와 신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상당수의 재판부 구성원들이 각자 본국으로 휴가를 떠났다가 복귀하는 과정에서 자가격리를 하게 되어 최근에는 팀원들이 모두 다른 도시에 머물면서 업무를 함께 처리하는 상황도 낯설지 않다.

     

    여러 사람의 업무 결과물을 종합하여야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24시간 내내 세계 여러 곳에서 수시로 도착하는 이메일들을 검토하는 일은 새로운 부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택 근무를 경험한 직원들로부터는 프놈펜의 열악한 도로 사정과 교통 체증 속에 출퇴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업무 효율의 향상이 있으므로, 이 기회에 재택 근무시간을 더 늘려 달라는 설득력 있는 요청을 받는다.

     

    팬더믹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를 계기로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법원의 업무 처리 방식을 전면 재검토해 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이 있다. 직접 대면하여 실시간으로 구술변론을 하는 방식은 수백년 전 근대 재판제도가 도입된 이래 필수적이라고 여겨졌다. 현재 팬더믹에 대한 대응 역시 이러한 변론방식을 당연한 전제로 하되, 일부가 원격 영상을 통해 참여하는 형태로 보인다.

     

    그러나 법원 건물 자체가 폐쇄된 경우에는 이러한 방식을 사용할 수 없다. 인구 대비 인터넷 접속률 96%, 스마트폰 보급률 95% 등 세계 최고의 인터넷 환경과 이에 친숙한 국민을 보유한 우리나라로서는 보다 적극적인 대응책을 낼 수도 있으리라 본다. 예를 들면 비동시적(asynchronous), 계속적(continuous) 변론을 허용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즉,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경우 재판부가 당사자들을 초대해서 채팅방을 열고 기한을 정해서 각자 서면을 첨부하여 변론하도록 한 다음 필요 시 채팅 메시지로 소송지휘를 하고 판결을 할 수도 있다.

     

    이러한 방식은 새롭거나 혁신적인 것이 전혀 아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미 2006년 서울행정법원에서 블로그 내 게시판을 이용한 재판을 시범 실시한 바 있었고, 캐나다의 Civil Resolution Tribunal, 영국의 Traffic Penalty Tribunal을 비롯하여 호주, 미국, 중국, 싱가포르 등에서 이미 상당히 정착되었거나 시도되고 있다.

     

    실시간 변론은 제한된 범위에서 공개될 뿐이나, 이러한 형태의 재판은 그 정보가 모두 저장되어 추후 공개되거나 활용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이미 빅 데이터와 기계학습을 통해 사건의 결과를 확률적으로 예측한 후 이를 바탕으로 분쟁을 조기에 해결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카츠(Katz) 교수 등의 2017년 연구는 사건 데이터베이스에서 추출된 240개의 변수를 이용하여 약 70%의 예측 성공률을 보였는데, 그 변수 중에는 판결 이유와 전혀 관계 없는 정보가 다수 포함되어 있다.

     

    약 30년 전, 컴퓨터에 의한 재판에 극히 회의적인 견해를 표명한 바 있었던 리처드 서스킨드 교수는, 사법제도의 궁극적 목표는 '정의의 실현'으로서 이제는 반드시 인간인 판사의 관여를 거쳐 구현되어야 할 필요가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일부의 주장처럼 판사가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날이 쉽게 오진 않겠지만, 팬더믹을 계기로 OECD디지털 정부 지수가 1위임에도 사법시스템 신뢰도는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백강진 재판관 (크메르루즈 특별재판소(EC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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