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로 활동한 지 수 년이 지났지만, 1월 초가 되면 매번 변호사시험을 봤던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5일 내내 매우 긴장한 탓인지 현재 남아 있는 기억은 단편적이다. 남편이 사랑으로 싸준 도시락을 들고 문 앞에서 인사했던 장면, 시험 시간 동안의 적막감, 내 필기구에서 났던 사그락거리는 소리 같은 것들, 그리고 사람 몸에 뇌가 2개가 있으니 무조건 합격일 것이라는 지인들의 농담을 계속 되뇌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난 뱃속에 8개월 차에 들어선 첫 아이를 품고 있었다.
평소 대가족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일찍 취직이 결정되자마자 철없이 가족 계획부터 세웠었다. 그러니까 아이와 함께 변호사시험을 보기로 한 것은 오롯이 나의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어릴 적 보았던 신사임당 위인전에서와 같이 태교를 잘 하지 못하는 부분이 못내 아이에게 미안했다. 아이를 위해 좋은 말, 좋은 행동만 하려고 노력했지만, 급격한 신체적 변화에 큰 시험을 앞둔 부담감까지 이것저것 뜻대로 되지 않아 매일 절망했던 그런 날들이었다.
이후 후배들로부터 나의 변호사 시험기가 수험생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된다고 들었다. 그러나 필자가 무사히 변호사 시험을 치를 수 있었던 이유는, 가족들의 헌신적인 희생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시험을 마치고 조산기가 있어 2주 간 누워 지냈다. 아무일이 일어나지 않아 천만 다행이었다.
헌법재판소는 임신·출산, 중대한 질병의 경우에도 변호사시험 5회 응시제한의 예외사유로 인정하지 않는 현행 변호사시험법을 합헌으로 결정했다. 나와 같은 사례가 존재한다는 것이 행여나 합헌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싶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다사다난했던 올해 변호사시험이 끝났다. 중요한 시험을 치르신 모든 분들, 그리고 특히 쉽지 않은 상황에서 시험을 치른 많은 수험생 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김정현 변호사 (창경 공동법률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