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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비법

    황성욱 판사 (상주지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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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 부모님이 외출한 틈을 타 처음으로 라면을 끓였던 날이다. 라면 봉투에 적힌 대로 물을 맞추고, 면과 스프를 정성껏 털어 넣었다. 보글보글 거품이 끓어오르자 왠지 부담스러워 불을 낮추었다가, 스르륵 거품이 꺼지면 괜히 안쓰러워 불을 높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완성한 라면은 10살 평생 먹어본 적이 없는 천상의 맛이었다. 봉투에 적힌 대로 끓인 라면에서 이토록 특별한 맛이 나다니. 그렇다면 봉투에 적히지 않은 불 조절이야말로 이 맛을 나게 한 비법이 틀림없었다. 돌아오신 어머니께 내가 찾은 비법을 의기양양하게 전수하였으나, 어머니는 그저 웃으실 뿐이었다.

     

    성공의 원인은 대개 복합적이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교과서 위주로 꾸준히 공부했다"는 식의 심심한 것들이 차지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영 성이 차지 않는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 흔히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포함되어야 '비법'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그래서 성공의 결과를 두고 '비법'을 찾으려는 시도는 때로 위험하다. 본말이 전도되기 쉽고, 전혀 엉뚱한 것이 비법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

     

    재판의 결과를 돌이켜 원인을 찾는 것도 비슷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재판의 승패는 객관적인 사실관계의 유불리가 핵심이고, 그 다음은 그에 대한 증거의 제출일 것이다. 대여금 사건에서 승소하려면 돈을 빌려주었어야 하고, 차용증이나 거래내역을 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하면 판결에, '이러이러한 증거를 보니 저러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누구의 말이 맞다'고 적힌다. 이것이 가장 객관적인 승소의 원인이다.

     

    그런데도 판결에 쓴 이유는 라면 봉지에 적힌 조리법처럼 그저 틀에 박힌 건조한 말로만 느껴지고, 실제 이유는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있다고 믿는 경우가 자주 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딱딱한 재판 절차에서 흐름이 잘 보이지 않고, 판결의 글과 틀이 일상과 떨어진 것으로 느껴질 수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판결에는 그 결론에 이른 진짜 이유를 가능한 담으려고 노력한다. 설명의 핵심이기도 하고, 공격받아야 할 대상이 명확해야 있을지 모르는 오류가 바로잡힐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적어도 내 재판에서는 승소의 '비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이유'가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황성욱 판사 (상주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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