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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그때 그곳

    황성욱 판사(상주지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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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바뀌고도 어느 새 달포가 지나고 있다. 다섯에서 여섯이 되어 자랑스런 막내와 달리, 나는 몰래 손을 꼽아보고서야 나이를 센다. 그러다, 문득, 내 기억 속 그때의 아버지, 어머니가 겨우 지금의 내 나이였음을 깨닫는다. 가슴이 슬쩍 내려앉는다.

     

    그때는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가족들은 저마다 각자의 몫을 견디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어른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가끔은 야속했으며, 내색하지 못하는 것이 서럽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 그때의 아버지, 어머니가 아마 서 계셨을 그곳에 닿았다. 나는 생각만큼 여물지 않았고, 원하는 곳에 손이 잘 닿지 않는다. 지금의 내가 그때 그곳에 있는 상상을 해 본다. 때로는 도망가고 싶었겠다. 내려놓고 싶기도 했겠다. 그럼에도 그곳을 지키는 일은, 고단하고 외로웠겠다. 당신들의 삶에 내려앉은 후회나 반성을 나의 원망으로 삼은 순간들이 떠올라, 슬며시 죄책감이 든다.

     

    이번 달에 동기들이 부장이 된다. 머리를 말리고 있을 때 들이닥친 손님을 맞는 것처럼 엉거주춤한 기분이다. 내가 기대했던 이 시기의 내 모습은 지금과 달랐다. 오랜 시간 성실함을 지혜로 바꾸어 쌓아, 어지간한 사건에는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절로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성실은 쉽게 입에 담을 수 있는 가벼운 말이 아니었다. 나름의 노력을 지혜로 바꾸어주는 환전소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고, 환율은 터무니없었다. 알고 있는 것보다 알아야 할 것이 더 많다. 그럼에도 알아가는 속도보다 잊어버리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걱정스럽다. 어지간한 문제가 왜 답을 찾지 못하고 분쟁이 되는지는 조금 알 것도 같은데, 그 답을 찾는 것은 점점 어렵다. 쉽게 무언가를 '안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게 되었으나, 안다고 할 수 있기까지의 시간에 조바심이 난다.

     

    지금 이곳에 와서야 그때 그곳을 겨우 이해하게 된다. 지금에서야 할 수 있는 위로가, 시간을 거슬러 가는 동안 해지고 낡을까 걱정이다. 그때 그곳에서 보던 곳에 닿았으나, 여기는 목적지가 아니다. 다시 매무새를 추스르고, 어디로 발을 디뎌야 할지 엎드려 길을 살펴본다.

     

     

    황성욱 판사 (상주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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