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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法臺에서

    그날

    김태균 판사 (서울중앙지법)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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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허~ 그날이 옵니까?" 연수원을 마치고 처음으로 법정에 갔던 날 재판장이 물었습니다. 법무관이오? 네. 언제 제대요? 3년 후입니다. 어허 그날이 옵니까? 당황했지만, 군대에서 흔히 하는 농담이라 웃었습니다. 혼자서 처음 해보는 재판의 긴장감도 살짝 풀어졌습니다. 문제는 한 달 뒤의 다음 기일이었습니다. 기억을 못 하는 건지, 아니면 짓궂은 건지 재판장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종전과 똑같은 물음을 했습니다. 법무관이오? 언제 제대요? 그날이 옵니까? 재판장은 여전히 근엄한 표정으로 그날이 언제 오는지 대답을 재촉했고, 양옆의 배석판사들은 고개를 돌리며 웃음을 참고 있었지만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쭈뼛쭈뼛할 뿐이었습니다.

     

    그때는 당황했지만 그건 풋내기 법무관의 긴장을 풀고 격려해주려는 배려였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재판을 부드럽게 이끌어가는 그만의 여유와 스타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이든 간에 '그날'의 기억은 이제는 미소 짓게 되는 아련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나는 옛날에 재판해본 적이 없어서 옛날에 어떻게 재판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법정에서 판사, 검사, 변호사가 재판 외의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가벼운 인사말, 명절이나 세밑에 하는 덕담도 없습니다. 사건번호 확인하고 바로 재판을 진행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일표는 일일이 인사하고 부드럽게 진행하기에는 너무 빼곡합니다. 또 자칫 의도와는 다르게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그날'이 언제 오느냐고 물었던 재판장을 상대편에서는 어린 법무관에게만 친절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선수들끼리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당사자에게는 자못 심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친절하고 부드러운 재판도 중요하지만, 그 친절을 양쪽에 고르게 나누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양쪽에 고르게 딱딱한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판결은 경칭을 쓰든 미사여구를 쓰든 그것이 어느 한쪽에게는 강제로 불이익을 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불이익을 주는 과정인 재판이 한쪽으로 치우쳐 보일 우려가 있다면, 나는 까칠해도 고르게 까칠한 판사를 택하겠습니다.

     

     

    김태균 판사 (서울중앙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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