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학년 때 들었던 '교양국어' 수업 중 '가장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사람'이라는 주제로 리포트를 제출한 적이 있다. 고교시절까지 수많은 사람의 위인전을 읽었었음에도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겨우겨우 한국 근대사 속 인물을 선택하여 리포트를 작성하여 제출하였다.
담당강사는 과제에 대한 강평을 하면서 선정된 인물의 유형을 분류해보니 많은 학생들이 역사적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사람들이 아니라 부모 등 가족이거나 선생님 등 지인을 가장 존경하고 본받고 싶은 사람으로 선택하여 무척 의외라고 설명하였다. '가장'이라는 글자를 중시하다보니 그 대상 또한 위대하다고 평가받은 사람들 중에서 선정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른 기준을 택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부연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주위의 존경을 받던 사람들이 한순간의 일탈 내지 부주의로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상황을 자주 접하였고, 역사적 인물들의 뒷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삶이 멋진 행보로만 점철되지 않았음을 알게 되면서, 오히려 가까이에서 바라봐왔던 친지나 동료 등 지인들의 삶을 존경, 본받음의 대상으로 삼음이 마땅하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것은 당연한 듯싶다.
물론 그 분들이 흠 없이 살아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어떤 순간에 보여준 결단, 그 후에 겪은 고초, 이를 극복해 나아가 다시 그 전보다 높은 지점에 자리하는 모습이 주위에 공감대를 불러 일으켰다면 그 한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존경, 본받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간혹 자리 잡기 이후 보여준 모습으로 주변을 실망시킬 수 있고, 그 전의 행실로 구설에 올라 오히려 그 자리에 오르지 않음만도 못할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조차 반면교사의 교훈을 안겨주기에 결코 비난만은 할 수 없다.
그저 그 뒷모습에 마음속으로 "존경할 수 있는, 본받고 싶은 삶의 순간을 보여주어 고맙다"는 감사의 인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내본다.
한진희 부장검사 (고양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