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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초포럼

    사법개혁의 길

    홍기태 원장 (사법정책연구원)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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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혁(改革)에서 혁(革)은 가죽을 펴고 가공하는 모습에서 유래한 상형문자이다. 동물의 가죽(皮)은 그대로 쓸 수 없는 것이어서, 옷이나 신발과 같은 용도에 맞게 다듬어지는 가죽(革)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글자 그대로, 변화하는 시대에 사법이 지향하는 목표에 맞추어 사법제도와 사법체계를 새롭게 다듬는 것, 그것이 사법개혁이다.

     

    가죽을 벗겨내는 일이야 순식간에 할 수 있지만, 가죽을 두드리고 다듬고 말리며 모양을 잡는 일은 정성과 시간이 소요되는 힘든 과정이다. 사법개혁도 이와 다를 수는 없다.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사법제도를 허물어뜨리는 일은 한순간이지만, 그것만으로 더 나은 사법이 보장되리라는 법은 없다. 기존 사법을 벗겨내는 일이 1이라면 더 나은 사법을 구축하고 정착시키는 일에는 10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검찰의 과도한 수사, 인권침해가 문제였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사권과 공소권 분리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개혁의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지만 검찰의 수사권 축소 내지 폐지가 곧바로 더 나은 형사법체계와 질서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경찰이나 공수처 또는 제3의 기관이 인권친화적 측면에서나 수사역량의 측면에서 검찰을 대체할 수 있는지, 수직적인 관계에 놓이지 않은 다양한 수사기관이 등장했을 때 불분명한 권한의 확정이나 수사 협력은 어떻게 할지 등등, 이어지는 난제를 풀어내는 것이 더 어렵고도 중요한 개혁 과제이다.

     

    안타깝게도, 능히 예상할 수 있었으나 애써 눈감았던 문제들이 쏟아지고 있다. 사건의 이첩을 둘러싼 공수처와 검찰 사이의 공방, LH 사건에서의 수사기관의 협력이나 검찰 수사의 활용 문제, 구미 영아 사망사건에서의 검찰 수사역량의 사장(死藏) 등. 수사나 재판 모두 전문인력이 행하는 것으로, 체계적 교육과 축적된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기존의 소중한 자산을 개혁의 취지에 맞게 활용하려는 고민은 없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사법개혁의 과제로 등장한 법원행정처의 개혁도 마찬가지이다. 기존의 법원행정처를 해체하는 일은 단순명료하다. 그렇지만 개혁의 핵심은 새로운 행정기구를 만들고 그 실질을 채워나가는 것에 있다. 사법부가 지향하는 가치와 목표, 사법행정의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개방적인 사법행정과 더불어 사법부의 특성, 나아가 행정의 신속·효율을 담보할 수 있는 인적 구성과 조직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 최근 정당 추천 위원들이 다수 포함된 여러 위원회에서의 정치적 공방을 보면, 정치에 오염되지 않으면서 국민의 뜻을 반영하는 사법행정기구를 정립하는 길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일순간의 속 시원한 개혁만큼 눈길을 사로잡지 못할지라도, 꾸준하고 빈틈없는 사법개혁이 올바른 길이다. 지금은 사법개혁의 방법부터 개혁해야 할 판이다.

     

     

    홍기태 원장 (사법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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