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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요일언

    익숙함이 주는 위험

    윤원서 법무사 (서울서부법무사회) 입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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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봄에 머리가 하얗고 체구가 작은 할머니가 필자의 사무실을 방문하셨다. 할머니를 자리로 안내하고 무슨 일 있으시냐고 여쭤보자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내미셨다.

     

    할머니가 주신 서류는 채무불이행자명부말소신청 사건의 심문서였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알고지낸 자식 같은 부부에게 돈을 빌려주었는데, 이들은 몇 번 이자를 주더니 그 후엔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도 주지 않아 소송까지 했는데 그래도 변제하지 않아서 이들을 채무불이행자명부등재신청을 하였다고 하셨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이 서류가 법원에서 왔다고 하면서 어떡하면 되냐고 물어보셨다.

     

    통상 채무불이행자명부말소신청은 채무자가 채무를 모두 변제하였거나 회생·파산 등의 사유로 채무를 면책 받은 후에 신청한다. 그 신청서에는 당연히 말소사유와 이를 입증할 서면을 첨부한다. 자주 접하는 사건이라 '지금 딱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내가 지금 가만히 있으면 그 사람들한테 바보로 보일 수 있으니, '이 사람들은 지금까지 한 푼도 변제하니 않은 나쁜 사람들이다'라는 내용을 법원에 제출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필자는 별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할머니가 소원이라고까지 말씀하시니 말씀을 참고하여 의견서를 작성해 법원에 제출하였다.

     

    한참 후에 우연히 사건을 검색해 보게 되었는데 결과는 예상과 달리 기각이었다. 익숙함이 필자로 하여금 예단을 가지게 하고 게을러지게 하여 자칫 엉뚱한 결론에 이를 뻔한 사건이었다.

     

    익숙함은 편안함을 준다. 그러나 때론 그 익숙함으로 인해 주의와 집중력이 떨어지고 자칫 위험한 예단에 빠져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이 할머니의 사건은 '익숙함이 주는 위험을 경계하여야 한다'는 교훈을 준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다.

     

     

    윤원서 법무사 (서울서부법무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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