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지난 4일 '사건사무규칙'을 제정·공포하고 이날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여기에는 그동안 검찰과 갈등을 벌여온 '공소권 유보부 이첩' 조항, 공수처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사건을 사법경찰관이 수사하는 경우 (검찰이 아닌) 공수처에 영장을 신청할 수 있다는 조항, 공수처가 수사권을 가진 사건을 수사하다 검찰에 송치하는 대신 불기소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조항 등이 담겼다. 그런데 이 규칙은 제정 절차, 내용에 문제가 있어서 앞으로 사건관계인의 방어권, 법적안정성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고 검찰과 갈등의 골이 깊어질 개연성이 있다.
우선, 헌법은 국회에 전속된 법률 제·개정을 제외하고, 대통령, 총리 및 행정 각부, 대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 지방자치단체에만 위임 입법권을 부여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 총리, 행정 각부에 속하지 않는 '독립 기구'인 공수처가 규칙제정권을 가지는 근거 자체에 대한 의문이 있다.
더욱이 공수처 규칙은 다른 수사기관에 대한 수사자료 요청, 수사절차 중지 요청, 수사 후 이첩 요청 등 다른 국가기관에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공수처가 기관 내부의 업무에 관한 규정을 만들 권한은 있겠지만 법률에 구체적인 근거나 위임 없이 다른 국가기관에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의 규정을 제정할 권한은 없다. 특히,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되어 있는 형사소송 절차에서 새로운 규정을 창설하려면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하고 현행 형사소송 체계에 반하지 않아야 한다.
공수처법 제17조 제3항은 공수처장은 소관 사무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제정하고자 하는 경우에 이를 법무부장관에게 의안 제출을 건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공수처는 이러한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 대통령령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입법예고, 관계부처 의견수렴, 국무회의 의결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공수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기인한다. 그동안 공수처 설치 논의 과정에서 많은 학자와 법조인들이 헌법상 근거가 없어서 독립기구로 만들 수 없고, 다른 기관과의 역할 분배를 상세하게 법률에 규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런데도 국회는 이러한 우려를 묵살하고 공수처를 독립기구로 설정하고 내용도 엉성하기 짝이 없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단 공수처가 설치된 이상, 보완 입법을 통해 해결하고 그 이전이라도 문제점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관 간에 머리를 맞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른 기관과의 협의나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법령의 근거도 없이 다른 기관에게 의무를 부여하는 이번 규칙 제정은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고 기관 사이의 갈등을 낳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입법사항은 법 개정으로, 나머지는 대통령령으로 정하여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