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인의 대법관이 연간 4만 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우리나라 상고제도가 정상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근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고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 국민의 85%가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수차례 시도된 상고제도 개선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고, 여전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지금도 상고허가제, 고등법원 상고부, 대법관 증원 등 여러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사실 어느 방안도 새로울 것이 없고, 각 제도마다 장단점과 나름의 근거가 있어 특정 방안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제는 결단을 할 때라는 주장이 틀리지는 않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어떠한 결단을 할 것이며, 과연 어떠한 결단이 국민을 위한 제도개혁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인가.
권리구제와 법령의 해석통일을 목적으로 하는 상고제도는 헌법질서 안에서 구현되는 것이어서, 기본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따라야 한다. 문제는 모든 사건에 대하여 대법원에서 재판받을 기회를 달라면서도, 개개 사건에 대하여 더욱 충실한 심리와 깊이 있는 판결을 해달라는 모순된 요구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이다. 후자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제도적 고안을 하였으나 전자의 희생이 부각되면서 상고제도의 개선에 실패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다.
"상고심은 법률심이어서 그렇게 많은 사건을 처리하는 곳이 아니다", "3심제는 헌법상 보장된 권리가 아니다"는 식의 훈계는 자칫 상고제도의 개선에 대한 거부감을 더 증폭시킬 수 있다. 우리 상고제도는 논리보다는 오랜 기간 쌓여온 법률문화와 법의식에 의해 정착된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선 국민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하려는 마음으로 대법원의 그릇을 키우는 쪽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대법관을 지금보다 50% 증원할 경우 대법관 1인당 사건수는 3분의 1 감소하게 되고, 그만큼 충실한 심리가 가능해진다.
그러나 대법관 증원만으로 난제를 풀기에는 한계가 있다. 대법관을 두 배로 증원한들 여전히 상고제도 개선이 절박하였던 20년 전의 수준으로 되돌리기도 어렵다. 대법관을 수십, 수백 명까지 증원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급격한 증원은 하급심 강화에 역행하고 법조일원화 시스템과도 맞지 않다. 헌법이 정한 대법관 임명절차와 6년 임기제가 대법관의 대폭 증원과 어울리는지도 의문이다.
결국 대법관을 일부 증원하더라도 최소한의 상고제한은 불가피해 보인다. 누가 보더라도 상고이유가 없는 사건, 변호사도 말리는 상고사건, 상고하고 나서 결과적으로 후회하는 사건 등 처음부터 상고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사건도 상당히 많은 것이 현실이다. 사건의 홍수 속에 중병을 앓고 있는 상고심의 치료를 위하여 단일한 처방을 고집하기보다 종합처방으로 접점을 찾아보면 어떨까. 각 개선안의 긍정적 요소를 버무린 종합적 해결책을 기대해 본다.
홍기태 원장 (사법정책연구원)